부안제일교회 사태해부

지난 3월22일 저녁 10시, 약간 비탈진 길 위로 어둠 속에 부안제일교회 본당 건물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밝힌 십자가. 교회의 분란 때문일까. 십자가는 왠지 ‘사랑의 하나님’이란 메시지보다 ‘우울한 하나님’으로 슬프게 다가왔다.

기자는 황진형 목사가 있는 사무실로 들어섰다.

황진형 목사. 그는 부안항쟁에서 반핵 대책위 공동대표를 지냈다. 그런 선입견 때문인지 시민운동가 같은 느낌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형광등 밑에 마주 앉은 황목사는 차가워 보였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황진형 목사의 이목구비는 웃지 않으면 그늘이 느껴질 정도다. 왜 그럴까.

본보는 소대구 장로 측에 공식적인 취재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소대구 장로는 인터뷰를 거부했지만 지난 11일 아침에 기자를 만나 주었다.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황목사를 “고아원 출신이라 인성이 잘못된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기자는 황목사의 얼굴에 있던 그 그늘의 의미를 그때서야 이해하게 됐다. 간난신고를 겪은 사람만이 갖는 각진 얼굴.

기자는 12일 황목사를 다시 찾았다. 그는 자신이 고아원 출신이란 사실을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와 헤어진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서 나를 고아원에 맡겼습니다. 생존해 계신 어머니는 그 사실이 큰 빚으로 남았습니다. 물론 저 역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오히려 그 역경을 딛고 이렇게 성장한 것은 더욱 은혜로운 일입니다.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말끝에 황목사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내보이고 싶진 않겠지만 어린 시절의 그 경험이 목사 황진형을 만든 힘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에게 그늘과 웃음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었다. 두 번에 걸쳐 만나 새벽까지 질긴 인터뷰에 시달린 황목사. 그와의 대화를 정리했다.


-제일교회 사태가 수위를 넘은 것 같다. 어떤 상태인가.

주일 11시 예배는 교회의 공식적인 대표 예배고 교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시간이다. 그런데 저쪽(소대구 장로 측) 교인들이 자신들도 예배를 드리겠다는 명목으로 핸드 마이크를 켜고 대형 스피커를 틀어대는 등 7개월째 예배 방해 행동을 하고 있다.

-문제의 시초가 무엇이었나.

314명 교인들의 서명 등 청빙(목사를 추대하는 과정) 절차를 통해 내가 제일교회에 부임한 것이 지난 97년 9월1일이다. 처음엔 문제가 없었다. 한데 어느 날 소대구 장로가 자신을 수장로라고 칭하며 “수장로가 재정부장을 하죠?”라고 말하길래 “돌아가면서 하던데요”라고 말하며 재정부장 의향에 반대했다. 아마도 소장로는 그때 나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가졌던 것 같고 나는 이것이 발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 뒤로 어떤 문제들이 있었나.

2001년 6월23일에 나를 사임하게 하려는 추진위원회를 소장로 측이 구성하게 된다. 당시 사임추진위원회는 8월31일까지로 설정해 강단에서 설교를 불허하고 급료 및 생활비 일체를 중지한다는 내용으로 사임 통고서를 보내 왔다. 당시 그들이 밝힌 사임 이유는 나의 금전비리와 목사로서의 품위와 지도자로서의 자질 부족, 권위 상실, 목회의 비전이 없다는 등이었다.

그리고 그해 11월부터 2002년 4월까지 반년 동안 무려 13건의 고소, 고발, 진정, 탄원이 이어졌다. 소장로는 결국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160시간이 선고됐고, 2심에서 3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지난해부터 더욱 극심해진 것으로 안다.

그렇다. 작년 3월14일에 소대구 장로 측 교인 265명이 교회를 탈퇴하기에 이른다. 또 4월에는 교단인 전서노회(당시 노회장 김항안 목사)에 나를 제소했고 노회는 기소를 결정했다. 소대구 장로 측과 노회 일부 목사가 결탁하여 교회 질서를 파괴한 것이다. 결국 우리는 8월26일 신도들과 함께 공동의회를 열어 교단을 탈퇴하는 결의를 하게 되고 독립교회를 결의하기에 이른다. 노회는 당연히 나에 대해 목사 면직을 결정했던 것이다.

-소대구 장로 측이 교회를 탈퇴해 분리를 요구했다면 왜 본당으로 진입해 예배를 보려고 하는 것인가.

소장로 측은 교회탈퇴가 교회를 분리하는 데 불리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것 같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총유 재산은 교인으로 있을 때 주장할 수 있고, 탈퇴하면 소멸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단을 변경하거나 탈퇴해 교단이 없는 독립교회로 남더라도 교인으로서의 권리를 상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고, 소대구 장로 측은 재산권이 소멸된 셈이다. 이를 뒤늦게 알고 스스로의 결정을 부정하고 있다.

-우호적인 사람들조차도 황목사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는 시각이 큰 것 같다. 본인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우선 교회 바깥에 계신 분들은 교회는 싸우지 않아야 할 곳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하루가 멀다고 싸워대니까 ‘목사도 문제가 있다’는 시각을 가졌다고 본다. 저쪽은 그걸 알고 계속해서 싸움을 거는 것이다. 서서히 흠집을 냈다. 저쪽은 싸우면 목사가 불리하게 돼 당연히 물러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떠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떠나지 않는 이유다.

또 나에 대한 선입견도 있는 것 같다. 부안 같은 끈끈한 관계로 얽힌 지역에서 부안 출신이 아니란 사실은 치명적일 수 있다. 교회 내부에서도 이 지역의 교회는 호남신학대학 출신 목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나는 장로회신학대학 출신이다. 나를 시샘하는 시각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한쪽의 얘기만 듣고 내린 판단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그 모든 얘기가 저쪽에서 만든 얘기란 점이다. ‘목사가 가만히 있는 걸 보니까 사실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정상적이라면 교인들은 서로 욕하는 걸 즐기지 않는다. 우리 교회를 다루었던 법조계 사람들도 문제를 조사한 뒤에는 선입견을 버리는 사례가 많았다.

-문제는 불거질 만큼 불거졌다.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결국 이 교회는 분리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동안의 사건들이 함께하기엔 너무나 큰 짐이다. 교회문제가 법정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지금은 법원에서 조정 중이다.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 협조할 생각이다. 하지만 저쪽에서 예배 시간을 조정하자고 하는 가처분 신청을 낸 것에 대해서는 우리 문제를 더욱 힘들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교인들의 생각이다.

저쪽은 군청 공무원 등이 대부분이다. 예배 시간을 확보해서 그들이 대덕 견학을 기획하듯이 교인 수를 늘리고 그를 통해 교회재산 분할의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려고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재산을 떠나서라도 교인들을 더 힘겹게 만들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부안주민들께 드릴 말씀이 있다면.

이유야 무엇이든 목회자로서 부끄럽다. 제일교회 문제로 걱정하시는 주민들께 송구스럽다. 아무쪼록 빨리 매듭을 짓고 교회 본래의 모습으로 거듭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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