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이 사람 부안군청림청소년수련원 관리업무 김구민 팀장 

청림청소년수련원에 밤이 찾아왔다. 밤하늘의 별빛이 수련원 지붕에 내려앉아 8m 개방형 돔지붕이 금방이라도 하늘을 향해 날아 갈 듯하다. 밤하늘의 별빛을 헤치며 그는 청림청소년수련원이 자랑하는 1000mm 나스미스식 반사망원경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영겁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이 우주의 한 가운데로 그를 던져버렸고, 그는 그 곳에서 산산이 부서져 어느새 의식마저 희미해 졌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한 줄기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복지사가 될 수 없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운명이 자신의 삶을 가로 막을 때마다 나지막이 그 말을 내뱉었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전주한일장신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보육원생들의 사회적응 및 자립을 위한 기관인 자립생활관에서 반 년 동안 근무한 후 1991년 부안군 1기 사회복지사로 낯선 변산면사무소에서 복지담당공무원 업무의 첫발을 디디게 된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더구나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에 투신한 사람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극심한 갈등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지로 사회복지 업무는 기계적인 분류작업의 성격을 갖고 있다. 복지 혜택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심사에서 제외되고, 복지 혜택에서 제외되어야 할 사람이 편법을 동원해 복지 혜택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들어 복지업무 담당자의 재량권이 축소되면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복지누수 현상과 민원인의 눈에 비친 사회복지사의 모습에 자괴감이 느껴진다.

사회복지사는 어두운 그늘 속에서 산다. 그들이 상대하는 민원인은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러나 복지 혜택을 원하는 사람과 복지혜택 요구량은 많은데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사회복지사들은 연민적인 감정을 억눌러야 할 경우가 많다. 예전에 할머니 한 분이 키우던 손자를 보육원으로 보내려고 찾아왔습니다. 아무리 설득을 해도 할머니는 완강하게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였습니다.

면사무소 나들이에 들떠 있는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의 미래에 밝은 빛이 내려 앉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업무 속에는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결혼 전에 자취를 하고 있었을 때 일입니다.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소년가장을 자취방에 데리고 와서 같이 살았어요. 친동생처럼 생각하며 살다보니 정이 많이 들었죠. 그런데 그 애가 절도도 하고 이런저런 나쁜짓을 해서 결국 소년원으로 가게 됐죠. 모든 게 내 책임인 것만 같아 미안하고 서글펐습니다. 이렇게 사회복지사의 마음 속에는 검은 숯덩어리가 몇 개 놓여 있습니다.

부드럽고 유순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그는 강인한 사람이다.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휴유증으로 오른팔과 왼발이 불편하지만, 자신을 배려해 주는 것에 대해 완강히 거절한다. 정상인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강해져야만 했다. 어찌보면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일에 투신한 것도 불행을 이겨내기 위한 의지의 투영인 지도 모른다. 그는 2005년 부안을 뒤덮은 폭설로 인해 또 한 차례 불행을 겪게 된다. 축사에 쌓인 눈을 제거하기 위한 작업을 하던 중 축사에서 떨어지고 만다. 이 사고로 같이 일하던 농촌지도센터 직원은 사망하고, 그는 12시간의 수술 끝에 의식을 회복하고 3개월 만에 본래의 업무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도움으로 치룬 장애인 부부의 결혼식을 이야기 하며 사람들이 남의 것을 빼앗는 것에 마음을 쓰기보다는 도와주는 것에 마음을 쓰면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김구민 씨는 1967년 출생으로 군산시 송풍동에서 태어났다. 부안군 청림청소년수련원에서 관리업무를 총괄하고 있으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북지역본부 부안군지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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