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희롱 사건 피해자 배정자 씨

국가인권위 결정에서 각하 처리된 배정자 씨 성희롱 사건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그동안 알려진 사건의 개요는 성희롱 발생->기자회견->경찰이 고소->진술 번복->대책위 확인서 제출->고소 취하->진정 각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피해자 본인의 강력한 ‘진술 번복 부정’으로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25일 본보를 통해 국가인권위 결정문 기사를 접한 배정자(53) 씨는 본사를 방문해 “각하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배씨는 “반핵대책위에서 (성희롱이) 진실이 아니란 요지의 확인서를 써주었다고 하는데, 그러니 각하될 수밖에 더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상황을 종합하면, 2003년 11월30일 밤 10시께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배정자 씨와 김선녀 씨는 “경찰로부터 심각한 수준의 성희롱을” 당하게 된다.(본보 24호 참조) 이 사건은 반핵대책위의 기자회견으로 이어졌고, 경찰은 반핵대책위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게 된다.

이 고소를 빌미로 검찰은 대책위 집행부와 피해자 모두를 조사하게 되는데, 이때 검찰은 먼저 조사를 끝낸 배정자 씨의 진술조서를 이현민 전 반핵 대책위 정책실장에게 보여준다. 이 조서가 바로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판단된’ 문제의 핵심이다.

이현민 전 반핵 대책위 정책실장은 “참 안타깝다”며 답답했던 당시 상황을 토로했다. 이씨에 따르면 당시 진술조서에 “애초의 피해 주장을 번복한 내용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결정적인 내용조차 기억이 안 난다’고 돼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에 확인서를 써 주기 전에 왜 본인에게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를 두고 대책위에서 상의를 했다. 당시 피해를 당해 심각한 우울 상태에 있던 분을 감안해 본인에게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보호와 함께 당연히 대책위까지 보호해야 했던 상황도 고려한 결정이었다.

이에 대해 배씨는 “나는 하늘에 맹세코 진술을 번복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배씨는 “옷이 벗겨졌던 것도 경찰이 의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용서할 수 있다”며 “하지만 내게 쉼 없이 욕설을 퍼부으며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을 했던 그 경찰을 용서할 수 없고 그래서 항의한 것”이라고 또박또박 입장을 밝혔다.

당시 배정자 씨 사건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전북여성단체연합(전북여연)의 이미정 인권부장은 “검찰조사 때 동행했고 조사가 끝난 뒤 본인에게 확인했을 때 ‘똑같이 그대로 진술했다’고 말한 점을 미루어 볼 때 배정자 씨가 진술을 번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부장은 대책위가 검찰에 제출한 확인서를 뒤에 알고 난 뒤 역시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결국 이 사실조차 본인에게 알리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전북여연과 보조를 맞췄던 송혜선 씨는 이에 대해 “참 안타까운 사건이었다”며 운을 뗐다. 송씨는 “경찰과 검찰이 의도한 대로 된 것”이라며 “검찰이 확인서를 받고 경찰의 고소를 취하하게 했지만 결국 경찰은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뿌려 폭력진압을 정당화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또 “피해자를 서로 위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결정적인 사실 확인을 놓친 것 같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피력했다.

결국 이 사건의 시선은 검찰의 진술 조서로 쏠리게 된다. 검찰의 질문과 본인의 답변이 적시되어 본인의 확인을 최종적으로 거쳤다는 진술 조서가 본인이 말한 내용이 아닌 다른 내용으로 가득 찼다면 어떻게 된 일일까. 의혹이 증폭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이현민 씨는 “사실 확인 절차를 거쳐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씨는 “여자로서 죽고 싶은 정도로 당했던 일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더 이상 법에 호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배씨는 “결국 우리가 이긴 것 아니냐. 그럼 됐다고 생각한다. 다만 좀 섭섭할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배씨의 말 속에 부안항쟁에 대한 자부심과 ‘여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힘겨움이 함께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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