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장 싸움에서 두 번이나 구속된 이인규씨 사연

“구속된 후에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싫어서 풀려나오면 이민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정부보고 사는 게 아니라 우리 부안주민들 보고 삽니다. 늙어죽을 때가지 부안에서 살랍니다” 핵폐기장 싸움 과정에서 두 차례나 구속됐다 지난 23일 풀려난 이인규씨(나이?)가 그 날 저녁 군청 앞에서 열렸던 목요집회에서 간단한 소회를 밝혔다. 부인 최숙자씨와 딸 선혜(7), 아들 민서(6)의 손을 꼭 잡고 나온 이인규씨는 어느새 평범한 가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국가에 의해 유린된 한 가정의 행복이 집회에 나온 주민들의 뜨거운 격려의 박수와 함께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지난 4일 아침, 상경집회에 반핵깃발을 펄럭이며 나타난 이인규씨는 항소를 준비중이라고 했다.. 이인규씨는 지난 해 9월 내소사(김종규 군수 폭행)사건과 관련해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올 2월 24일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명령 120시간을 선고받았다. 내소사 사건 당시, 이인규씨는 주민들과 전경들이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김종규 군수가 내소사로 들어오면 다칠 게 뻔해 부안반핵대책위 차원에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이인규씨가 “핵폐기장 결사반대”라고 외치며 시위대에서 뛰쳐 나간 뒤, 전경들의 강경진압에 대항하던 주민들에 의해 버스가 전복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차 전복과 관련해 이인규씨가 주범으로 구속된 것이다.
또 다른 사건은 반핵싸움이 주춤해졌던 지난 12월, 한수원에서 보내준 일본 원전시설 관광을 다녀온 일부 개인택시조합원들의 명단과 차량번호가 반핵부안 사이트(nonukebuan.or.kr)에 올랐다. 이와 관련해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으로 다시 구속된 것이다. 경찰 수사과정에서 사이트에 오른 글이 부안성당 IP였고, 택시업계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소행이라는 게 이유였다. 내소사 사건으로 수배중이던 이인규씨는 부안성당에서 지내야 했고, 당시 택시운전을 했던 이인규씨의 경력을 알고 있던 이들이 이인규씨를 지목해 고소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련해 이인규씨는 계속해 무죄를 주장하며 지난 달 30일 항소를 신청했다. 사이트에 오른 글은 이인규씨가 쓴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인규씨는 “경찰 수사과정에서 인터넷 ID와 비밀번호까지 공개했고, 성당 컴퓨터 IP라면 압수수색해서 찾아내면 될 것이 아니냐”고 부당함을 제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특히, 교도소에서 판결을 기다리던 이인규씨는 자신을 고소한 이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로 인해 개인택시조합에서 제명당하고, 수입이 떨어졌다, 택시를 시가보다 싸게 팔았다는 등 자신들의 손해를 들먹이며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것을 알고, 너무나 억울했다”며 당시 심정을 밝혔다. 다행히 지난해 7월 반핵결의를 한 개인택시조합 회원 130여명이 반론의 탄원서를 제출해준 상태다. 이인규씨는 풀려나서 개인택시조합원들을 찾아다니며 “도워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을 고소한 이들에 대해서 사건이 잘 마무리되더라도 “용서는 하겠지만, 잊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법원까지 간다는 생각으로 항소를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스카이라이프 영업점에서 일하고 있는 이인규씨는 밤낮없이 일하고 있다. 추석명절에도 택시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동안 못다한 가장 몫을 톡톡히 했다”며 웃어보였다. 남편 대신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에서 물리치료 보조업무를 해온 부인 최숙자씨는 “남편이 구속된 얘기를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을 때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며 “아이들이 아빠를 찾을 때 너무나 힘들었다. 특히 딸 선혜가 아빠 편지를 받고 다른 방에서 혼자 우는 것을 보고, 속이 짠해서 빨리 어떻게라도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앞섰다”고 당시 심정을 털어놨다. 남편이 구속된 후 2.14 주민투표때 차량 방송을 하기도 했던 최씨는 부안항쟁의 숨은 일꾼이기도 하다. 주민투표가 잘 돼야 남편도 빨리 나오지 않겠냐는 마음에서였다.
상경집회에서 만난 이인규씨는 어느 때보다도 활기찬 모습이었다. 틈틈이 상경집회 홍보활동도 부부가 함께 해왔다. 특히 주민과 주민사이의 갈등을 만들고 있는 정부를 믿을 수 없어서 이민을 생각했다는 이인규씨는 “풀뿌리 민초들은 밟아도 일어서는 걸 배웠다”고 한다. “내가 징역 가서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두 세배로 그 자리를 채워줬다”며 “어려움을 감당해온 부인과 2천원 3천원씩 변호사 비용을 모아준 주민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향미 기자 isonghm@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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