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 많이 길어진 계절이지만 이미 어둠이 깔릴 때까지 논을 돌아보다 옷에 흙탕물이 튄채로 돌아와 시골집 마루에서 포즈를 취한 이명기 청년. 사람 좋은 미소와 익살스런 말투가 매력적이다.                                                                                                              사진 / 김정민 기자
낮이 많이 길어진 계절이지만 이미 어둠이 깔릴 때까지 논을 돌아보다 옷에 흙탕물이 튄채로 돌아와 시골집 마루에서 포즈를 취한 이명기 청년. 사람 좋은 미소와 익살스런 말투가 매력적이다. 사진 / 김정민 기자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구수한 목소리로 송창식의 ‘왜불러’를 멋지게 부르며 듣는이들에게 감동과 놀라움을 주곤 한다. 지난해 부안군트로트대회에 나가 2등을 했을 정도로 노래를 잘하고 끼가 넘치는 이다. 
어려서는 변산면에 있는 작은 대안학교인 변산공동체에서 유기농업과 시골살이에 대해 배웠고, 스무살이 채 되기 전 극단에 들어가 음악과 연기를 익혀 배우가 됐던 그는 제대 이후 부안으로 돌아왔다.
학생들과 어울려 생활하기를 좋아하고, 사람에게 있어 어떤 일보다 농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는 화학비료와 농약, 비닐을 쓰지 않는 대신 손과 발을 놀려 고단한 작업을 감당해야 하는 유기농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랜 시간 문화예술활동을 해왔고, 변산이 좋아 돌아와 청년농부의 삶을 살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했다.

 

-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부안군 변산면 변산공동체에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서른 살 청년이다. 대안학교인 변산공동체학교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지금은 경남 산청군에 있는 예술공동체 ‘큰들’에서 마당극 배우로 활동하다 제대 후 지난 2020년 다시 변산으로 돌아왔다. 3년 차 접어든 초짜농부다. 

- 마당극이라는 장르가 생소하다. 어떤 것인지
마당극은 탈춤, 풍물 등을 가미한 연극으로 예로부터 장터 등 마당에서 벌어지던 전통 연희 예술활동입니다. 마당극의 주제는 일상에서 접하는 이야기를 엮은 이른바 민담입니다. 열아홉 살 때 마당극을 전문으로 하는 큰들이라는 극에 들어가 7년 동안 연기와 풍물 등을 배우고,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마당극에서 주요 배역을 소화했습니다.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를 담은 ‘오작교 아리랑’, 박경리의 소설 토지를 마당극으로 각색한 마당극 등 여러 가지 작품에서 연기했습니다. 

- 마당극에 다양한 음악적 요소와 이야기가 들어간다는 것인데, 음악을 익히고 연기를 배우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풍물에서는 주로 채상소고를 맡아 자반뒤집기 등 전통적인 연희를 배웠다. 연기는 극단 선배들의 공연을 보면서 ‘나도 무대에 서고 싶다’고 갈망하게 됐고, 적극적으로 배웠다. 선배들의 대사를 하나 둘씩 따라해 보면서 때로 술 한잔하고 대사를 쳐보면서 선배들로부터 검사를 받기도 했었다. 마당극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정적이고 표정과 대사에 집중된 방식의 연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음악과 몸짓을 두루 활용해 약간의 과장을 섞은 표현이 주를 이루기에 그에 맞는 연기 공부를 했던 것 같다.

- 마당극을 배우고 활동하면서 보낸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중반의 7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거나 대수롭지 않을 것 같다. 어떻게 떠나 변산으로 와 농사짓게 됐는지

우선 군대에 있던 시절 전역과 맞물려 코로나 시국이었다. 그래서 공연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문화 예술적인 활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려서 이사를 많이 다닌 가정환경 탓에 고향이라 부를만한 곳은 변산이었다. 변산공동체학교에 학생들이 있어서 그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변산에 와 공동체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도 해보면서 농사짓고 살게 됐다.


- 변산공동체는 그럼 어떤 곳이며, 어떤 농사를 짓는지

1995년 변산면 운산리에 자리잡은 변산공동체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 유기농을 짓고,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찾으며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큰 목표로 삼는 곳이다. 건강한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이며, 제도권 교육과 다른 배움을 찾아온 아이들을 가르치는 대안학교이기도 했다. 지금은 학생이 없어 학교는 문을 닫은 셈이지만.
나는 열일곱에 세 살 어린 동생과 함께 변산공동체학교에 와서 살며 이곳의 가르침을 배우고, 농사일도 어깨너머로 접했다. 그 시절의 경험이 농사의 중요성과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가치관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실천하게 만든 힘이 된 것 같다.

- 변산공동체에서 유기농업을 한다고 했는데, 어떤 농사를 짓는지 궁금하다.

벼농사와 더불어 우리가 먹는 다양한 것들을 두루 재배한다. 메주콩을 심어 직접 장을 담그고, 두부를 만들기도 한다. 쌀로 막걸리를 담아 마시고, 우리가 생산한 농산물을 그저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이들에게 직거래로 판매도 하고 있다.
봄과 여름 산과 들에 나는 각종 산야초를 채취해 장아찌를 담고, 효소도 만들어 마시며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고 우리 몸에도 건강하고 좋은 먹거리를 자급자족하고자 노력한다.

- 농사일이 한창 바빠진 철인데, 생활이 힘들지 않나

솔직히 힘들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모내기를 앞두고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들판에 나가 밥 시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일하고 있다. 요즘 너무 가뭄이 심해 내 속도 함께 타들어 가고 있다. 논에 물을 대야 하는데 물이 충분치 않아 농부들의 마음은 모두 같을 것 같다. 우리가 하는 농사는 농약과 화학 재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무섭게 자라나는 풀들과 꼭두새벽부터 논, 밭으로 나가 종일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과 살벌하게 자라는 풀들을 함께 상대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래도 지금 하는 이 농사일이 재미가 있다. 공연할 때는 무대에 서는 한 시간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연습하고, 이를 쏟아부어 공연을 마치는 쾌감을 느꼈었다. 농사는 고단한 시간을 견디고, 자연이 허락하는 수확을 얻었을 때 공연 못지않은 뿌듯함과 배부름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젊은 나이에 바라는 바도 많을 테고 이를테면 개인적인 욕구라던가 도시의 삶이라던가 그런 건 없나
공교롭게도 도시에서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도시의 삶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막상 나가 살아보려니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마음도 물론 있지만, 마음만 있다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자면 지금의 삶보다 더 고단한 생활과 일을 감당해야 하지 않겠나. 지금의 생활 속에서도 좋아하는 것들이나 바라는 것들을 나름대로 찾아가는 중인 것 같다. 오토바이 타는 재미가 들어 작은 바이크를 한 대 샀고, 유용하게 타고 있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해 부안군트로트경연대회에 참가해 ‘18세 순이’를 불러 2등인 금상을 받았다. 지금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직접 영화를 만드는 전체 과정을 가르치는 부안청소년영화캠프에서 실무자도 맡아 참여하고 있다.


- 이를테면 지역에서 특별한 활동도 하고, 음악적 기량을 살려 재미있는 이벤트를 하는 것 같다. 풍물 외에도 음악을 좋아하는지
변산에 와서 공동체학교에서 생활할 적에 농사도 배우고 기타치는 것도 배웠다. 10년 넘도록 기타를 놓지 않고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소소한 취미로 이어오고 있다. 노래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김광석, 송창식, 김현식 같은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옛날 가수들과 그 노래들을 좋아하고 즐겨 부른다. 아주 뛰어난 가창력이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어디 가서 노래할 기회가 있으면 결코 빼지않는 편이다.

- 쉽지 않은 농사일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역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는 모습이 멋있다. 자신의 활동이나 농사일과 별개로 부안이라는 지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좋은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이 있다. 좋은 점은 풍족한 자연환경이 대표적이다. 다른 곳에서 농사를 지어볼까도 생각해봤는데 부안만 한 곳이 없다. 바다가 가깝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산도 있다. 변산공동체에서 농사를 지은 덕분인지 지역에서 텃세를 느끼거나 할 일 없이 잘 녹아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쁜 점은 땅값이 너무 비싸고 집을 구하는 일이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농사를 짓는 가장 근간이 되는 땅을 구하기 어렵고, 삶에 가장 필수적인 집을 구할 수가 없다면 여기서 나고 자랐거나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부안에서 뭔가를 도모해볼 수 있을까. 
그래도 좋은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여름에는 가까운 바다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고, 봄에는 개암사와 같이 아름다운 곳에 쉽게 나들이할 수도 있다. 가을이면 내소사 단풍 구경도 좋은 추억이 된다. 또 겨울이면 눈이 많이 내려 좋은 경치도 빼놓을 수 없다. 
부안의 자연에서 비롯된 다양한 추억과 에피소드가 많아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사계절을 이렇게 다채롭게 즐길 수 있었던 곳은 없는 것 같다.

- 부안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 같다. 앞으로도 쭉 부안에 살 생각인지.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가능하면 부안에서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다. 부모님이 멀지 않은 정읍에 계시지만 지금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역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좋다. 어릴 때 만났던 아저씨들도 지금껏 지역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계시고, 그분들에게서 농사에 관한 배움을 많이 얻고 있는 점도 좋다. 무엇보다 마음 맞고 걱정 없이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친구들이 가까이에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 그렇다면 앞으로 오래 살아보고 싶은 부안이 어떤 곳이 되길 바라는지
지금은 새만금에 막혀버렸지만, 학생일 때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을 보며 옛날 도로로 버스를 타고 다니며 좋아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추억과 좋은 경험은 사람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요소이기에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자연의 변화와 파괴가 우리의 추억을 해치지 않길 바란다. 아름다운 부안의 자연환경을 잘 살리면서 농사와 환경, 문화 예술적인 요소를 잘 살리는 지역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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