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옹정팔영

해문의 낙조
먼 바다에 푸른 하늘 잠겨 있는데  
노을빛에 위아래가 붉게 물들었네  
아득히 돛배 하나 어디에서 오는지 
부상의 저녁놀 흠뻑 띠고 있구나   

선봉의 갠 눈 
온갖 나무는 참담하게 찢어지고  
나는 새들도 아스라이 끊어졌네  
틀림없이 산사의 승려만 홀로    
산속의 눈을 감상하고 있으리라  

죽경의 맑은 바람 
빽빽한 대숲에 오솔길 흐릿하니  
앞 시내가 어둑어둑 저물어가네  
술에 취해 바위에 기대 자다가   
산들바람 불어와 절로 깨어나네  

송고의 서늘한 달 
소나무 위로 달이 처음 걸리니   
서늘한 밤기운 뼛속에 스미누나  
학 등에 올라앉아 바람을 타고   
경요의 굴을 답파라도 하는 듯   

하당의 빗소리 듣기 
늘어진 버들 속 작은 누각 하나  
둥근 연잎 새로 물위에 나왔도다 
무단히 한밤중 후드득 빗소리가  
원앙새 단잠을 화들짝 깨우누나  

매오의 봄 찾기 
매화를 찾아 눈 속을 가노라니   
어디에서 향기가 나는 것일까    
미처 몰랐네 물가의 매화 가지   
봄 마음이 벌써 이와 같은 줄    

전포의 고기잡이 구경 
갈대꽃 언덕 끼고 하얗게 피었는데    
곳곳마다 어부의 노랫소리 들려오네   
한밤중에 조수가 밀려들까 두려워     
물가에서 저물녘 그물을 걷는구나     

후원의 밤 줍기
팽택 현령 벼슬살이 그만둔 뒤로     
전원의 가을 흥취 풍성도 하네그려   
아이가 한 삼태기 안고 돌아오니     
이른 아침 소매 가득 맑은 서리로다  

─이수광, ‘지봉집’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고전종합DB)

 


이수광의 오언절구 시 중에 ‘해옹정팔영(海翁亭八詠)’이 있다. 이 아름다운 시는 어디에서 쓰여진 것일까. 바로 줄포의 천배산, 옛이름으로는 천대산에서다. 1600년대, 천대산 위에 해옹정이라는 정자가 지어졌는데, 이 정자를 지은 사람은 해옹 김홍원이다. 임진왜란 때 그는 의병들을 모집하여 이 산에서 훈련을 시키고 왜군과 싸워 전공을 세웠다. 선조는 공을 인정하여 천대산 일대의 토지를 김홍원에게 하사하고 신도비를 세웠다 한다. 일대에 장자골이라는 마을이 형성된 것도 군사훈련에 참여한 장정 일부가 남아 거주하면서였다. 김홍원이 관직에서 물러나 말년에 천대산에 마련한 것이 자신의 호를 딴 해옹정이다. 
‘해옹정팔영’은 해옹정에서 지어졌고, 시를 지은 사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이다. 1614년에 편찬된 <지봉유설>로 유명한. 이수광이 그 시대에 줄포의 천대산 해옹정을 다녀간 것이다. 1932년에 부안향교에서 발간한 <부풍승람>에 따르면, 택당 이식, 계곡 장유, 기옹 정홍명, 지봉 이수광, 현곡 조위한, 청하 권극중, 관해 임회 등 여러 현인들이 함께 소요하며 시를 지었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천대산의 시야로 들어오는 사방팔방의 풍광들이다. 서해바다 쪽으로는 능가산의 신선봉과 마천봉이고, 동쪽으로는 영주산과 방장산이 있고, 능가산 바다 건너 맞은편은 선운산과 소요산이다. 천대산 바로 앞은 강동리이거나 줄래리의 줄래포가 있는 바다이다. 지금은 신기동과 교하동이다. 그 앞 본동 일대가 ‘곳곳마다 어부의 노래소리 들려 오는’ 바다였으니 해옹정에서 내려다 본 대호(大湖, 줄포만)의 장관이 얼마나 빼어났을까. ‘해옹정팔영’은 그 장면들에 감응하여 지은 시이다. 후세의 부안 사람들은 곰소 앞 웅연강에서 고깃배들의 풍치를 ‘웅연조대(雄淵釣臺)’라 하여 변산팔경이라 하였으니 이미 그 시작은 천대산 앞에서부터였던 것이다. 줄포만 바다는 호수이며 그 갯골은 강이었던 것이다. 줄포에 강동리(江東里)와 강서리(江西里)가 있었던 까닭이다. 줄래리(줄포) 사람들은 지금의 본동 일대 갯골을 강으로 불렀던 것이다. 
오늘의 줄포 사람들로서는 조선시대 빼어났던 천대산 앞 바다 장관을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천배산체력공원’의 이름만 있지 주민들 이용도 관리도 잘 안되는 곳이라니! 그런데, 어디 그뿐이었는가. 해옹정 주변 일대 즉 장동리 혹은 줄래리는 풍치만이 아니라 땅까지 비옥한, ‘절대 없는’ 경우의 땅이었다. 누가 지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청하기(淸霞記)’에는 그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바로 천대산 일대의 줄포의 잊혀진 이야기가 장엄하게 등장한다. 

세 가지가 갖추어진 땅
“땅이 사람에게 마땅한 것은 얻어서 겸하기가 어렵다. 땅이 비옥하고 밭이 좋은 곳은 인물이 거주하기에 마땅한 곳이지만, 산수의 아름다움이 없다. 산수가 뛰어나면 땅이 척박하여 거주하기에 마땅치 않다. 설혹 두 가지를 갖추었더라도  강과 바다가 뛰어난 것을 겸한 경우는 절대로 없다. 그런데 지금 공이 사는 곳은 세 가지가 갖추어진 땅이다. 
내가 일찌기 공의 정자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니, 북쪽에 능가라는 명산이 있다. 둘레가 100리인데, 바닷가에서 불쑥 일어나 바다로 60리를 들어가니, 뾰족 솟은 산봉우리의 검푸른 색이 바다에 거꾸로 비친다. 신선봉과 마천봉 등 여러 봉우리에는 가끔 신선이 학을 타고 부는 피리 소리가 들려오니, 이것은 바다 가운데 삼신산의 하나이고, 영주산과 방장산에 버금간다. 산의 남쪽에 있는 동네는 우반이라 한다. 
왕포는 천석이 매우 뛰어난 곳으로 정자로부터 겨우 10리쯤이나 걸어서 오고가는 곳이다. 남쪽에 있는 큰 호수는 이름이 고만(菰灣, 줄포만)이다. 조수를 삼켜버리니 그 너비가 20리이고, 홍제(虹堤)가 호수를 막고 있으니 그 길이가 5리다. 또 선운산과 소요산 두 산이 있는데 호수를 사이에 두고 능가산과 마주하고 있다. 섬과 물굽이, 갯벌, 맑은 물, 언덕의 나무와 물가의 풀들, 하얗고 누런 갈대는 하늘과 함께 물결을 비추고, 산봉우리들은 잠겨 있으며 안개가 자욱하게 끼였다. 이것이 진실로 두 개의 동정(洞庭)이고 두 개의 군산(君山)이다. 
동쪽으로는 긴 육지에 닿아 있고 바로 서쪽으로는 큰 바다가 있으니 서명(西溟)이라 한다. 이른바 우연은 해가 들어가는 곳이라 하니, 그 너비와 크기가 가없다. 그 하늘이 내려준 도탑고 큰 것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위아래가 방향없이 아득히 넘실거리니, 하늘인가 땅인가? 구름인가 물인가? 높은 곳에 기대어 바라보면, 사람을 발광케 하는 대책을 세워 장대한 뜻을 품게 한다. 그래서 임공이 동해 중의 큰 물고기를 낚고자 하는 마음과 종각이 바람을 타고서 흥기하고 중니가 뗏목을 타고자 하는 뜻이 있었고, 노양이 해를 끌어당기려는 계획이 있었던 것이리라.
잠깐 사이에 기후가 돌변하여 천태만상이 해시와 같고 신기루가 둘러싸 분명히 비상한 것을 만들어내니, 이는 무슨 기운인가. 고래같은 파도와 미꾸라지 같은 물결이 하늘을 차고 허공에 끓어오르고, 우레 소리가 커 산이 기울었으니, 이는 무슨 소리인가? 바다색이 맑고 파도가 일어나지 않으며, 섬들이 점점이 펼쳐 있고 돛단배들이 출몰하며, 백구와 종달새, 작은 달과 긴 바람이 불어, 장주와 같이 천지를 버리고 더불어 홍몽하게 노니는 뜻이 있다. 이것은 정자에서 사랑을 바라보아 산과 바다의 경치에서 얻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정자 아래에 이르러서, 사람살이가 풍성하고 토지가 아름다운 것은 또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능가산의 한 줄기는 남쪽을 향하여 뱀처럼 구불구불 내려와, 호수에 다다라서 올라가 바다에 이르러 다하였다. 큰 물결은 거듭 일렁이고 고개와 육지가 서로 내달려 바람을 피하고 볕을 받으니, 사람이 살기에 마땅하다. 온갖 집들이 비늘처럼 즐비하고, 온 육지에 언덕들이 잇닿으며, 언전 수천 경에는 벼가 마땅하고, 곽전 수백 경에는 보리와 콩이 마땅하다. 
수풀에는 뽕나무와 대나무가 마땅하고 동산에는 감과 밤이 마땅하다. 배들은 버드나무 물가에서 만들고, 어염은 강물 길로 운송된다. 상인들은 나란히 걷고, 말과 소가 누비고 있다. 배의 깃발이 배 안에서 나부끼고, 물가에서 물고기 잡이에 해화가 깜빡인다. 강아와 술 파는 여인이 돈을 셈하며, 아리땁게 도사와 죽지를 노래부르니, 애원의 정이 격하게 넘어가네. 이에 진실로 고을이 번화하고 토지가 풍요로우니, 어찌 전당강의 큰 둑보다 못하였겠느냐. 대저 그렇다면, 이 정자는 계곡과 산, 강, 바다의 뛰어난 경치를 총괄하고 전야의 아름다움까지 겸하였다고 이를 만하다. 
아! 지금 산수를 유람하고 강과 바다를 찾는 자는 반드시 궁벽한 데로 들어가고 텅빈 곳으로 나아갈 것이나, 그 즐거움은 한때에 적합하여 항상 하기 어려움을 한탄한다. 어찌 지금과 같겠는가? 공이 고을에서 벼슬살이하다가 인끈을 던지고 돌아온 때에 강호의 한가로운 한 노인이 되었다. 고지대 저지대 밭의 수확들로 벼를 찧고 오곡을 까불어 노닌 곳의 평지에 화려한 집이요, 바다와 산의 풍경이 마룻방 창가에 기대앉은 궤석 아래로 저절로 몰려든다. 공이 말한 훌륭한 땅에 마땅하니, 반드시 말 잘하는 사람을 기다렸다가 그 경치를 서술해야 할 것이다. 비록 그렇더라도, 세 때와 네 계절에 비가 오고 볕이 나며 춥고 더운 사이에, 눈으로 접하고 귀를 꾀는 까닭은 진실로 다 헤아릴 수 없으니, 말 잘하는 사람도 진실로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내가 한 말은 이른바 만(萬)에서 천(千)을 취하고, 천(千)에서 백(百)을 취했으니, 그 원대한 것을 서술하고 그 근소한 것은 생략하였다. 정자(해옹정) 안에 이르러서 지은 짜임이 아름답다든지 수선이 기묘하다는 것은 모두 미칠 겨를이 없었다. 이는 진실로 유람하는 자가 한번 눈을 들면 다 얻을 것이다. 공은 휘가 홍원이고, 자가 이중이며, 관직에 있을 때 청렴하였다. 하물며 좋아하는 것을 보면 또한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는 것임에랴.”(출처 : 부안교육문화회관, <국역 부풍승람>)

‘천배산’ 명칭은 줄포의 흑역사?
지금은 ‘천배산’이라 부르는 산을 ‘천대산’으로 명칭 복원한 것은 이유가 있다. 해발높이 42.4m에 불과한 산이 불리웠던 이름들이나 한자 표기도 여러가지다. 천배산(天排山, 天拜山), 천대산(天臺山, 天岱山), 대산(岱山), 태매봉, 텐봉. 탬봉. 옛날에는 기우제를 지냈다. 1970년대를 전후해서는 ‘탬봉’이라 불리웠는데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천배산’으로 공식화되었다. 1917년에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지도에는 ‘岱山(대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1946년에 미육군지도국에서 제작한 지도에는 ‘TAESAN(태산)’으로 되어 있다. 천배산이라는 이름은 일본 식민지 지배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천배산이 농경문화가 지배하던 전통사회에서 기우제를 지내오던 곳의 의미로 ‘天臺山’으로 썼을 수도 있으나 이를 제거하고 신사를 참배한다는 의미로 일제가 ‘天排山’으로 바꿨을 수도 있다. ‘排’는 ‘밀치다’, ‘배척하다’의 뜻이 있는 반면, ‘拜’는 ‘절하다’, ‘굽히다’의 뜻이 있다. 천배산 아래 줄포초등학교 후문에서 장성동 당산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는 오솔길 가에 일제 신사(神社)가 있었던 것은 그 여지를 보여준다. 그 신사 앞에서 찍은 옛 사진이 있다. 신사 참배와 관련하여 천배산이라 불리어진 것이 사실이라면 줄포의 흑역사라 할 수 있다. 
줄포공립보통학교 시절의 줄포초등학교 응원가에 ‘천배산’(“천배산의 수호를 받아 마음과 몸을 갈고 닦아 언제나 우리 적군/청군”)이 나온다. 줄포 사람들이 ‘천배산’이라 하지 않고 중국어 발음으로 ‘텐봉’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이는 천배산의 이름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천대산에는 고대 시기에 토성이 있었고 유물이 출토되었다. 사람이 오래 전부터 살았다는 증거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의병장 김홍원이 의병들을 훈련시킨 장소였으며 김홍원의 묘가 있다. 일제시대 때 김홍원의 비는 수난을 겪었다. 줄포에서 대서소 일을 하며 줄포 이야기를 기록했던 김장순의 ‘내고장 줄포’에는 다음 대목이 나온다. 
“(천대산 남쪽 기슭의 장성동) 장승백이 당산나무 아래는 옛날 배를 메었던 흔적이 있었고 비석 일곱개가 옆으로 나란히 세워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임란 공신 나주공(해옹공이라고도 한다)의 비석이 있어 일제 말기 철거당하여 후손들(원장동 작고 김양술 씨 등등)이 장자골 뒤 천대산(천배산으로 통함) 선산에 묻었다가 광복 후 파내어 다시 세웠다.”

고길섶 /줄포면지 편찬주간, 문화비평가
고길섶 /줄포면지 편찬주간, 문화비평가

이렇듯 천배산은 천대산(天臺山)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황토구릉지로 이루어진 줄포땅, 방장산 줄기에서 변산으로 이어지고 고부평야에서 줄포만 바다로 펼쳐지며 줄포에서 흥성을 일으키는, 그 정기가 바로 이 천대산을 중심으로 흐르고 이어지고 새로워질 것이다. 옛 풍광을 다시 기억하며. 그런데 부안에서 줄포를 거쳐 흥덕으로 이어지는 국도 23번도로 4차선 확장을 하며 그 길이 천대산 기슭을 통과한다니, 이는 줄포의 옛 비경을 더욱 가려버릴 것이며 또한 줄포의 정기를 절단하는 일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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