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솔직함이 제 시에 가장 귀한 소재들이죠” 사위의 농사일을 도우러 변산으로 귀촌한 전남혁 시인의 말이다.
전남혁 시인은 지난 7일 첫 시집 『바람과 구름과 시냇물의 노래』를 냈다. 시집엔 전남혁 시인이 80년대 초반부터 소중하게 써내려 온 95편의 시가 담겨있다.
지난해 충북 청주에서 변산면으로 옮겨온 시인의 삶은 깊은 굴곡이 있다. 딸과 사위의 농사일을 돕고자 아내와 함께 오래 살던 곳을 떠나온 것이 다가 아니다.
전 시인의 부모님은 이북 출신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첫 장면에서 흥남항을 떠나 남쪽으로 사람들을 싣고가던 그 배에 시인의 부모님과 네 형제자매가 타고 있었다.
거제도에 내려 어렵게 살고 있던 가족에게 찾아온 막내 아기가 전남혁 시인이다. 그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당시 너무 가난하고 영양이 부족해 여섯 달이 되도록 임신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가난에 쌓여 태어난 전 시인은 어린 시절 몸이 약해 병치레도 잦았고, 순탄하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시절 야구선수였던 그는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인해 고등학교 야구부로 진학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사정으로 2년을 흘려보내고 늦깎이로 고등학교를 나왔다. 
늦은 진학 탓에 고등학교 졸업하기가 무섭게 입영 영장이 날아왔다. 늦으나마 고등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청춘의 즐거움을 즐길 새도 없이 군대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전 시인은 아쉬움이 많았겠지만 이미 옛날 일이기에 “고등학교 시절 늘 빡빡이였는데 머리 자랄 틈도 없이 군대로 끌려갔다”며 농담처럼 그때 이야기를 전한다.
병사로 입대해 계속 군대에 있기를 결심하고 부사관으로 복무하다 시험을 치러 장교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급을 두루 거치며 17년의 군 생활을 했다. 
전 시인이 처음 시를 쓴 것도 병사시절이던 1980년대 초반이다. 그는 “병사시절 철책선 근무를 서며 북에서 들려오던 대남방송과 북으로 보내던 대북방송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렇게 남과 북이 주고받던 비난과 거짓말을 들으며 ‘대남방송’이란 시를 썼을 때 즈음이 처음으로 시를 쓰던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시 읽기를 좋아했지만, 그전까지는 시를 써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늘 일기를 써왔던 것이 시를 쓸 수 있게 된 자양분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지금껏 써온 시가 무려 300편에 이른다.
시인으로 등단한 것은 2018년이다. 남들보다 늦깎이로 등단을 한 것인데, 그 계기도 사뭇 특별하다. 

전남혁 시인의 첫 시집 '바람과 구름과 시냇물의 노래'
전남혁 시인의 첫 시집 '바람과 구름과 시냇물의 노래'

시 쓰기를 좋아하는 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가 일터에서 만났던 한 시인을 소개했다. 혼자 즐겨 시를 써왔지만, 시인과 만나고 자기 시를 보여준 것은 처음이었다. 그 시인으로부터 시 쓰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밴드를 소개받고 그곳에 가입해 자기 시를 다른 이들에게 선보이며 활동했다. 
이후 그의 시를 눈여겨본 문인들로부터 대한문인협회에 시를 보낼 것을 권유받았고, 전 시인은 가장 마음에 드는 시 5편을 골라 보낸 결과 시인으로 등단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시인의 곁을 지켜준 아내가 시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전 시인이 아내와 만나 결혼한 이야기도 라디오 사연으로나 들을법한 얘기다. 군대 생활을 하다 서른을 넘긴 그에게 이른바 선 자리가 들어왔다.
울산에 지내던 스무 살 터울의 큰 형님이 지인의 딸과 자리를 주선했던 것이다. 전 시인은 첫 만남에서 아내의 미모와 목소리가 마음에 쏙 들었단다. 이후 광주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던 전 시인을 그녀가 찾아와 ‘결혼할 수 있겠냐’고 물었고 첫 만남에서 이미 그녀가 마음에 들었던 그는 결혼을 승낙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작 세 번째 만남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누가 보면 ‘경솔했던 것 아니냐’라고 할 만큼 급속도로 진행된 결혼이었지만, 삼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껏 부부는 서로를 의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
전 시인은 이야기를 나누며 “변산에 오길 참 잘했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딸과 사위를 도우며 지내고, 귀여운 손녀딸을 매일같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를 쓰는 자신의 마음이 달라졌다. 전 시인은 “도시의 바쁜 삶 속에서 느끼지 못했던 평화와 사랑이 변산의 자연 속에서 샘솟는다. 또 시에 필요한 소재들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해졌다. 매일같이 아름다운 풍경과 들꽃의 눈부신 색깔을 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변산 생활의 풍요로움을 자랑했다.
살아온 굴곡이 고스란히 담긴 전남혁 시인의 시 속에는 사랑과 그리움, 속죄와 후회 등의 다양한 감정들이 솔직담백하게 담겨있다. 뜻을 해치지 않는다면 되도록 순우리말을 쓰기 위해 애쓴다. 자신의 솔직한 마음이 오롯이 전해지기 바라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그의 시가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우리를 찾아왔다.


변산반도

                                               전남혁

돌아보면 
산안개가 허리 감은 의상봉이여!
그 봉우리 아랜 솔바람도 일어
푸른 나뭇잎은 물비늘로 반짝이고
가을이면 단풍 고운 빛이 되어
화답한다네

걷다 보면
하늬바람이 산자락을 밀어 올렸나
산·들·바다가 이어 내리고, 꽃 神들이
꽃신을 신고 걸었을 이곳에
들꽃은 즈믄 색으로, 철마다
절로 피어 웃는다네

걸음이 멈춰 선 변산 바다는
진주구름 놀 빛에 대봉감이 익어가고
비 그친 날은 
깨끗이 씻낀 무지개도 보았거니
가분토록 내 맘 들어 
저 노을에 띄운다네

내일 흔치 않은 꿈을 꾸랴?
나 오늘 도화원을 걸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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