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덕규(여성농업인센터 소장)

도시에 사는 너를 생각하며 이 글을 적는다. 내가 일하는 여성농업인센터는 여성농민회에서 92년 대선 여성농민공약으로 제안했던 것 중 하나였다. 그것이 2001년에 와서야 시범사업이 시작되었고 아직도 도별로 3~5개소 정도만 설치되어 있다.

여성농업인센터는 삼중고에 시달리는 여성농민들을 위해 고충상담, 보육, 방과 후 아동지도, 여성농민 교육문화사업, 도농교류사업 등을 하는 곳이다. 부안여성농업인센터는 그 안에 알곡어린이집과 하서공부방이 있다. 직원은 상담사 1명, 어린이집 교사 2명, 공부방 선생님과 미술선생님, 영양선생님, 기사님 등 모두 7명이다. 어린이집엔 20~25명의 영유아가 토끼반(5~7세), 병아리반(3~4세) 2개반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병설유치원부터 중학생까지 40여명의 아이들이 공부방에서 방과 후 활동을 한다.

도시 엄마들의 극성스러운 아이사랑을 보면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농촌 아이들의 안쓰러운 현실에 너무나 속상하다. 나도 우리 딸 수정이가 아기 때 업고 밭을 맸었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는 기다란 기저귀로 나무에 묶어 놓고 일하고 저수지며 뱀이며 온통 아이들에게 위험한 것 천지인 논밭에 데리고 다니며 일했다.

우리 수현이 돌 지난 지 얼마 안되었을 때 논에서 일하느라 트럭에 태워놓고 카오디오로 동요테잎을 틀어주었는데 차키를 돌려 시동을 걸어버려 얼마나 놀랐었던지 그 이후로는 아이만 차에 놓고 차키 꽂아 놓는 짓은 안한다.

우리 알곡어린이집도 지난 3월2일부터 새학기 수업을 시작했다. 도시나 읍 지역과 달리 면지역에서는 차량운행이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다. 우리 어린이집 아이들 20여명을 태우고 오려면 40여킬로를 1시간 넘게 돌고 와야 한다.

그런데 엄마들은 자기 아이가 1시간씩이나 어린이집 차를 타고 오가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좀더 일찍 가고 좀더 늦게 오기를 바래서 먼저 태우고 가고 늦게 내려 주기를 바란다. 집안일에 농사일에 바쁜 그 심정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한 새학기부터는 어린이집에서 희망자에 한해서 한자와 영어 수업을 하기로 했는데 월 5천원의 교재비 내기가 어려워서 (수업료는 따로 안 받는데도) 신청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만큼 경제적으로 어렵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는 교육계획안이나 안내문도 제대로 읽지 못해 2주에 한 번 나가는 야외학습 때면 미리 확인전화를 꼭 해야 한다. 아이들이 대소변을 실수하여 젖은 옷을 비닐팩에 잘 싸서 보내도 다음날 가방 안에 그대로 들어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 우리 공부방 아이들은 대부분 집에 일찍 가기를 싫어한다. 집에 가 봐야 어른들은 일하시느라 거의 집에 없고 같이 놀 친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학교가 쉬는 날도 공부방은 꼭 온다. 그리고 방학 때마다 1박2일에서 2박3일 동안 하는 캠프를 1년 내내 기다린다. 그런데 한달에 2만원 하는 공부방 회비도 내기 힘들어서 종종 한두달 쉬는 집도 있다.

아무튼 농촌의 살림살이는 이렇게 어려운데 도시 아이들의 과잉교육(?) 과잉보호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좀 신경질이 난다.

수입개방으로, 우르과이 라운드 때문에, WTO 때문에 능력 있으면 농촌을 떠나고 농사를 포기하라는 정부 덕에 많은 사람들이 농업 농촌을 떠나갔다.

정말 그야말로 우리가 책에서 보았던 저임금저곡가 정책에 깔려 대한민국 성장의 희생양이 되어온 농촌의 현실이다. 정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이 아무런 지원 없이 살아가면서 자기가 갖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희망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농촌의 아이들, 농촌의 희생을 딛고 도시의 온갖 편리를 누리는 너희들이 빚을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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