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인경 원불교 부안교당 교무

김인경 교무. 그녀의 잔잔한 미소는 천상 햇볕이다. 얼어붙은 마음도, 삐죽삐죽 튀어나온 마음도 조용히 다독인다. 부안항쟁의 거친 바다를 품고 어루만지며 견뎌 온 김교무. 오죽하면 50대의 그녀에게 ‘부안의 어머니’란 호칭을 붙였을까.

지난 17일 마감에 쫓기던 본보 편집국을 그녀가 들어섰다. 들뜬 목소리. 뭔가 반가운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의 손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결정문이 들려 있었다. 이 결정문으로 본보는 전국 최초의 특종을 하게 된 셈이었다.

본보는 두 달 가까이 결정문을 기다려 왔다. 인권위는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끝에 결정문을 확정했다. 인권위에서 뭔가 크게 ‘사고를 친’ 것 같은데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어 애태우던 시간이었다.

인권위는 맨 먼저 결정문을 진정인들에게 우편으로 전달했다. 인권위가 결정문을 공개하기 이전에 진정인부터 먼저 열람토록 한 절차에 따른 것이었다.

활짝 웃는 김교무로부터 전달받은 결정문은 전례 없는 권고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국가권력의 상징인 경찰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하고 피해주민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는 주문이었다.

해를 넘기며 고난의 길을 걸었던 부안주민들에게는 해갈의 물이었고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었다. 때늦은 훈계였지만 이 같은 전대미문의 결정문에 대해 부안주민을 대표했던 김교무는 “흡족하다. 인권위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또 기각된 사안에 대해서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며 당사자들을 위로했다.

지난 23일 기쁨으로 들떴던 환호가 잦아들 즈음 본보 편집국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권위 결정에 대해 총평을 한다면.

정부는 아직도 매듭을 짖지 않았다. 사면복권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의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 이렇게 매듭 없이 끝낼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가 책임지고 보상과 배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 결정으로 부안군민의 ‘한’을 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인권위의 결정은 흡족하다. 국책사업이든 국가의 일이든 제대로 하지 않으면 경고할 수 있다는 관행을 만들었다. 이례적인 결정을 내린 인권위에 감사드린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피해자의 범주를 ‘폭력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피해자’로 한정했다. 달리 말하면 향후 ‘폭력시위 여부’가 쟁점이 될 텐데.

우리가 싸움을 하자고 한 게 아니었다. 부안주민들은 국가의 폭력 앞에 빈손으로 찍히고 맞았다. 그야말로 생존의 위협을 느꼈고 이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항거였다. 나는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폭력이 있었다면 정당한 방어적 행동만 있었을 뿐이다. 경찰이 부안주민을 보호했다면 과격한 행동을 했겠나. 경찰은 오히려 과격해지도록 폭도로 몰아붙이며 폭력을 유도했다. 부안주민들은 ‘무저항 비폭력’으로 일관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경찰폭력이 가장 심했던 게 언제였나.

2003년 7월26일이다. 행자부장관과 산자부장관이 부안을 내려오고 대통령이 군수에게 격려전화를 했던 날이다. 그들은 헬기를 타고 위도로 가버렸다. 가장 극심하게 경찰로부터 당했던 그날 우리는 촛불집회를 시작했다. 이것만 봐도 우리의 평화적 의지를 알 수 있다. 그러던 주민들이 ‘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시작한 것은 11월께부터였다.

-인권위 결정문을 보면 사람이 죽어 나가지 않은 것이 천운일 정도다. 경찰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나.

인권위에 진정한 내용 그대로다. 경찰은 부안주민들을 철저하게 유린했다. 뾰족하게 갈린 방패로 얼굴을 가격했고 곤봉으로 있는 힘껏 머리를 내려쳤다. 두들겨 맞아 호흡 곤란을 호소했던 사람, 맞아서 기절한 사람, 출혈로 실려 간 사람... 끔찍한 생지옥이었다. 여성에 대한 성희롱도 다반사였다. 이것이 계엄이 아니고 무엇인가.

경찰은 하물며 2~3명이 함께 다니지도 못하게 했다. 추석 때 지나가는 사람조차 두들겨 패서 이빨을 부러뜨리는 일도 있었다. 일본사람들이 부안을 방문했다가 지나다닌다는 이유로 연행되기도 했다.

-결정문 이후에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주민들과 상의해서 결정하겠다. 당한 만큼 갚진 않겠다. 다만 확실하게 경종은 울리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경찰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책임자 처벌은 반드시 짚고 넘어 가려고 한다. 그리고 피해자 보상은 적극적으로 받아 낼 생각이다. 사면복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요구도 하겠지만, 그에 앞서 정부와 김종규 군수의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기각된 진정내용도 많다.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내소사 사건은 김종규 군수가 주민을 끌어들인 것이다. 내소사 주지가 청련암 등으로 피하라고 여러 차례 권유를 했지만 따르지 않았다. 성난 주민들에게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이것은 사실관계를 규명해서 부안주민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돼 있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됐지만 그 진실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다. 억울하게 당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권위 결정을 통해 억울함이 풀렸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그분들께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대가를 바라고 투쟁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한 그 자체만으로 위로하자고 말씀드리고 싶다. 부안독립신문이 진실 규명에 앞장서 주리라 믿는다.

-폭력의 당사자였던 경찰 속에 직업적인 경찰을 빼면 모두 군복무를 치루기 위한 전경이었다. 그들도 원치 않는 일에 동원된 셈인데.

처음 그들과 대치할 때는 전경들이 잡혀 오더라도 바로 돌려보냈다. 돌아가서 구타당할 수 있기에 장비까지 들려 보냈다. 하지만 방패와 곤봉으로 얼굴을 가격하도록 훈련받은 그들을 언제까지고 그렇게 보살필 수만은 없었다.

전경도 우리의 아들들이다. 부안에서 나쁜 추억을 남기게 돼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다. 시간이 지나면 고향을 지키려고 발버둥 쳤던 우리를 그들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