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는 부안 20

어느 곳이나 큰길 뚫리고 건물 들어서면 사람들이 모이고 보이지 않는 질서가 생기기 마련이다. 나이 따지고 탯자리 따지고 그것도 아니면 근육으로 겨루면서 질서를 만든다. 동물들의 영역확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법이 있다지만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깝다고 했잖은가. 그래서 쌈박질 잘하거나 힘 센 사람 얘기가 살이 붙어 전설처럼 나돈다.

이들은 활동하는 곳 이름을 달고 자연스럽게 나타났으니, 차부를 중심으로 한 배차장파나 극장 주변이나 빵집, 사거리나 오거리 역시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주먹들이 경쟁적으로 생겨났다. 부안차부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다툼은 사회에서 일탈한 개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집단의 이해관계가 달린 문제이며 사회현상일 수도 있다. 부안에도 철조망이니 검은손이니 하는 서클이 있다고 학교 다닐 때 들었다. 이들에 대한 얘기를 지역 생활사의 하나로 본다면 긍정이든 부정이든 기록될 필요가 있다.

차부 주변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주변 음식점이나 여관은 훈짐이 났다. 풍랑 주의보가 내리고 눈이라도 와서 차가 끊기면 섬사람들이나 변두리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잠자리를 부안에 마련할 수밖에.

사람들이 많이 이용했던 부안차부 근방 여관은 상서 동아실 사람 백주환이 운영했던 송백여관이다. 60년대 많은 연예인들이 극장 쇼를 하러 부안을 찾았을 때 비교적 깨끗했던 이곳에서 숙식을 했다. 송백여관은 이층 건물로 나중에는 순천당병원으로 바뀌어 입원실로 쓰였는데 지금이야 이런 건물이 어떻게 그런 기능을 했을까하고 의구심이 들지만 당시만 해도 꽤 쓸 만한 건물이었다.

낭주식당은 염낙완이 65년부터 운영했다. 그는 제일여관도 함께 운영했는데 하룻밤에  3,000원 2인은 5,000원 숙박비를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부안 차부를 중심으로 여인숙이나 선술집에 기대어 아금박시럽게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숱했다. 70년대 초에 차부가 옮겨가면서 이곳은 찬바람이 불었다. 인구가 줄고 상권이 죽자 본정통과 차부를 중심한 구도심은 옛날의 좋았던 때를 추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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