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는 부안 19

비라도 오면 부안 차부 마당은 이곳저곳에 물이 괸다. 버스가 즐비하게 늘어선 주차장 바닥 흙은 유난히 새까맣게 보였다. 여름날 대합실(待合室)은 찜통이다. 부잣집도 그 당시에는 선풍기 하나 장만하기도 어려웠으니 숨이 턱턱 막혀온들 ‘덥다 덥다’ 할 수도 없었다.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살았으니까. 겨울에는 사람 덕을 봐야 할 정도로 대합실은 추웠다. 쇠창살 너머로 표 끊는 아가씨의 허연 입김이 공기를 가르고, 대합실 한 가운데는 철망으로 둘러싼 연탄난로 하나가 넓은 공간을 헉헉거리며 추위와 다투고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부안차부 건물은 용케도 세월을 견디며 칠성슈퍼 뒤로 몸을 숨기고 서있다.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비좁은 공간에서 표를 끊던 아가씨가 몸을 뒤척이던 매표소가 그대로 있고 대합실도 건재하다.

일제 때 부안차부는 본정통(本町通)인 봉래병원 앞에 있었다. 차부를 떠난 차는 지금의 군청 앞 본정통 좁은 길로 다녔다. 김제나 전주를 가려면 이곳에서 삼남중학교 앞과 구름터(신운리) 지나서 백산삼거리를 지난다. 부안초등학교 앞을 지나 주산으로 간다거나 당산 앞을 지나 향교 앞으로 해서 고개 넘어 변산으로 갔다.

그 뒤 부안차부는 부안 극장 앞으로 옮겼다가 사진에 보이는 곳에서 상당기간 왕성하게 사업을 펼쳤다. 차가 많아지자 옆의 논들을 사들여 넓은 주차장도 마련했다.

부안차부 대합실 건물은 당시에는 상당히 멋을 낸 건물이다. 둥그렇게 모양을 내고 시멘트 벽돌로 단단하게 쌓아서 위풍당당하다. 지금이야 이렇게 방치 되었지만 부안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던 장소로 보자면 기억해야할 건물이다. 식민지시대에 만들어진 군청 앞 부안금융조합이 유일하게 등록문화재지만, 해방 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곳 부안차부나 문화공간이었던 동양극장이나 제일극장 등도 지역에서 관리할만한 건축 목록에 올릴 수 있다.

부안 차부를 중심으로 밸시런 얘기들이 많았다. 주먹깨나 쓰는 사람들의 이름들이 남아 있고 시장과 음식점과 여관이나 여인숙 등의 밤 문화가 형성되었다. 다음 주에 그런 얘기들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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