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사단법인 한국농업경영인부안군연합회(한농연)는 전창재 씨(43·부안읍 선은리)를 11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전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다른 단체장들처럼 화합을 강조했다. 그런 그를 지난 15일 한농연 사무실에서 만났다. 말쑥한 도회지 풍의 옷차림으로 취재진을 맞는 그의 첫 인상은 화이트칼라를 연상케 했다.
3대째 부안읍 선은리에서 가업을 이어온 그도 풍랑의 젊은 시절을 보냈다. 20대 초반에 훌썩 고향을 떠나고야 만다. ‘농부로 산다는 것’에 희망을 잃었다고 했다. 그래서 노동자가 되었다는 그. 수입개방으로 쌀 시장 전반의 붕괴가 우려되던 8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그러나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그는 향수에 젖은 객지생활을 정리했고 다시 고향땅을 밟게 된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천천히 그를 탐색해 갔다.
-다시 고향을 내려왔을 때는 어땠나.
내가 농사짓겠다고 하니까 주위 분들이 다들 놀랬고 걱정들이 태산이었다. 농사꾼 타입이 아니라나.(웃음)
-힘들지 않았나.
고등학교 때까지 농사를 돕긴 했지만 밖으로만 돌다 보니까 잘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처음엔 그들 말이 맞는 듯 했다. 어머니 혼자 (농사를) 하셨는데 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는 옆에서 지켜보며 도와드리는 수준이었다.
-지금은 농사를 얼마나 짓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으로 시작해 지금은 쌀농사만 53필지 정도를 짓고 있다.
대단한 부농이었다. 농사꾼이 아니라 사업가란 생각이 들 즈음 “자작은 5필지 정도 되고 나머지는 소작(임대)”이란 그의 뒷말이 이어졌다.
-핵폐기장 싸움 때는 구속되기도 했다던데.
그랬다. 군청 방화 사건으로 구속됐고 집행유예 2년6월을 선고받았다. 그때 마침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이 있었던 뒤라 엄격하게 다루어졌다. 반핵투쟁을 열심히 하긴 했지만 나는 방화 사건과 관련이 없었다. 억울하게 구속되고 유치장 징역도 산 셈인데, 이게 어디 나뿐인가.
전회장은 쉽지 않았던 당시를 회상했다. 40일을 유치장에 갇혀 있던 어느 날, 부인 황민숙 씨(41)의 면회가 끊겼다. 그는 “‘이제 올 것이 오는 모양이다’ 생각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아내가 구속된 나를 떠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구속되기 전 아내가 임신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부안에 그런 싸움판이 벌어지고 내가 구속되고 하니까 그 화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아이가 유산되는 상황을 맞았던 것이다. 아내는 3주를 입원했고 내가 풀려나서야 병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마음고생을 만만치 않게 했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이제 나 좀 봐달라”던 아내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짠해지는 모양이다.
-이제 한농연 얘길 좀 해보자. 2년 동안 어떻게 이끌어 가려고 하나.
모두들 아는 사실이지만 농촌이 어려운 상태에 있다. 하지만 어렵다고 포기할 순 없는 일이다. 이 역경을 헤쳐 나가는 데 30~40대 젊은 사람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절망적인 농촌을 희망의 농촌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한농연은 회원 정예화가 중요하다. 진정으로 농사를 짓겠다는 농민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그들이 농업에 애착을 가지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부안지역으로 보면 면단위 한농연의 활성화가 절실하다. 농민이 농정에 직접 참여하고 대처하려면 조직 강화는 필수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 쌀시장 개방을 앞두고 농업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다. 그에 못지않게 대안도 제시하는 한농연이 되고자 한다. 농민의 힘든 길을 열어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각론으로 들어가서 무엇이 가장 절실한가.
농산물에 대한 브랜드화다. 경기미나 이천쌀처럼 브랜드를 만들어야 제값을 받고 쌀을 생산할 것 아닌가. 품종을 단일화해야 한다. 그리고 농민들이 나락을 야적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저장탱크(RPC)를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 3박자-농민과 행정(군청), 판매(농협/RPC)가 맞아야 한다. 그러니 갈 길이 먼 셈이다. 청정 부안의 이미지를 통해 먹거리와 관광을 연계하면 살기 좋은 부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반목의 골이 깊다. 한농연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갈들을 해소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서로 화합하지 않고 골만 깊어지다 보면 지역에서 생활하기 힘들어 진다. 그건 모두에게 마찬가지다. 다만 핵폐기장에 대한 환상을 못 버린 집단에 대해서는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민회와도 반복할 이유가 없다. 그건 중앙의 논리일 뿐 부안을 위한 일에 연대하고 협력하겠다. 다른 단체와도 마찬가지다. 한농연은 농민의 권익을 신장하는 데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떠나가는 농촌이 아니라 다시 찾는 농촌을 위해 후계 인력을 양성하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 발전에 주축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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