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학교’ 꽃피워...내소사 사건에 폭도로 몰리기도대책위 내분 앙금 해소 과제로 남아

“후보지인 위도에서 24km밖에 떨어지지 않아 어민과 상인들이 핵폐기장 유치로 인한 생계 위협을 예감했다”. 진서면 반핵대책위(대책위)에 합류했던 사람들이 생각하는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자연스레 면 소재지인 곰소 지역의 상인들과 어민들이 반핵운동의 중심에 섰다.

이에 따라 2003년 7월 김군수의 유치 신청 직후 23개 마을을 대표해 38명의 대책위원들이 주축이 돼 대책위를 결성했다. 이기덕 부안수협 이사와 임경철 곰소1구 이장이 각각 초대 위원장과 사무국장을 맡게 됐다. 한 달 뒤인 8월 말부터 이영주-김영환 씨가 뒤를 이어 위원장과 사무국장을 이어받았다. 지도부 교체 배경은 다소 복잡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측의 위협으로 인한 동요와 ‘등교거부운동’에 대한 견해 차이 등이 작용한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이 지도부를 구성한 대책위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는 등교거부운동의 대안을 만들어 내는 문제였다. 이 전(前) 위원장은 “처음 사흘 동안 아이들이 갈 곳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이들이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읍내 피씨방을 전전했다”고 당시 정황을 간략히 묘사했다. 게다가 젊은 부모들은 일터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이에 주민들은 폐교된 운호초등학교 교사(校舍)를 임대했다. 건물 주변 제초작업부터 교실 청소까지 주민들의 몫이었다. 결국 8월28일 민들레학교가 대안학교로 열려 등교거부가 종료될 때까지 40여일 동안 운영됐다. 유미옥, 이재관 씨 등 지역 주민들과 인근 곰소초등학교 선생님들이 교사진을 구성했다. 지역 내 초중생 90여명이 이 학교의 학생이 됐는데 이는 전체 학생의 90%에 달하는 수치였다. 학생들은 다양하고 새로운 과목의 수업을 받았다. 정부와 김종규 군수를 풍자한 연극 공연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곧이어 9월8일 주민들을 폭도로 몰아 부친 계기가 된 내소사 사건이 발생했다. 추석을 앞두고 사찰을 순회하던 김군수의 내소사 방문 사실이 대책위에 포착됐다. 곰소를 시발로 격포와 변산 등지에서 주민들 500여명이 순식간에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민들레학교의 아이들까지 모일 정도였다.

주민들은 김군수를 향한 격앙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결정적인 폭행을 가한 것은 “전경들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사태의 전 과정을 목격한 김영환 당시 사무국장은 “최서권 의원의 제안에 따라 김군수에게 (핵폐기장 유치에 대한) 해명의 기회를 줬다. 하지만 그는 군민들을 사랑한다는 식으로 변명했다”며 주민들의 분노가 더욱 고조된 정황을 설명했다.

김군수의 발뺌은 곧바로 이곳 ‘아줌마 부대’의 제지를 받았고 몇 명의 ‘열혈파’ 아줌마들은 그의 얼굴을 향해 손바닥을 날리기도 했다. 이어진 핵폐기장 유치 철회 요구에 김군수는 탈출을 시도하며 전경쪽으로 도망쳤다. 김국장은 “김군수가 와이셔츠만 입은 상태로 돌진하니 전경들이 시위대로 오인했을 것”이라며 경찰측의 강도 높은 폭행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당시 주민들이 통제한 김군수의 차량 속에서는 사탕 봉지와 양주병 그리고 현금 뭉치가 들어 있던 가방이 발각돼 현장 분위기를 한층 악화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내소사 사태는 이 지역에서 진실이 제대로 규명돼야 할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같이 ‘외부’에 대항해 똘똘 뭉치던 반핵운동에 내부 분열의 시련이 찾아온 것은 지난해 3월말이었다. 2·14 주민투표를 성공리에 마친 뒤 대책위가 중심이 돼 치른 쭈꾸미 축제가 말썽의 단초가 됐다. 성금 1천여만원을 축제 자금으로 사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성금 지출의 타당성 및 사전 동의 여부를 둘러싸고 아직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당초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3월23일~26일로 ‘부안 방문의 날’로 정해 행사를 지원할 예정이었으나 노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대응에 나서야 했기 때문에 기대만큼 방문하지 못했다. 결국 행사 후유증으로 지도부는 사퇴했고 3개월 동안의 공백기를 거쳐 6월 말 박동선 씨가 위원장에 선임돼 과도기를 치렀다. 그 뒤 10월 초 ‘상경투쟁’을 계기로 최서권 의원이 바닥난 성금 모금에 나서며 위원장을 맡았다.

타 지역에 비해 잦은 지도부 교체와 그로 인한 주민들의 혼란은 새로운 고민 거리를 던져 주고 있다. 초기부터 현재까지 대책위를 거쳐간 위원장들은 모두 차기 군의원 선거 후보자들로 지목되고 있다.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상호 간에 견제와 경쟁의 심리가 자리잡았고 이는 ‘5파전’으로 불리는 지도부급 인사들 사이의 내분으로 표출됐다. 그 여파는 각각의 지지자들 사이의 편가르기로도 나타났다.

대책위가 개입된 오는 4월의 두 번째 쭈꾸미 축제가 새로운 화합과 단결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주민이 주인으로 나설 수 있는 지역자치운동을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정치 야망’을 견제할 수 있는 견실한 비판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이다. 이번 축제 뒤에 대책위가 해소할 예정인 가운데 곰소항 다용도 부지와 염전 골프장 건설 문제가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어 새로운 단체 결성의 흐름을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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