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전북여성단체연합)

성차별의 상징인 호주제가 지난 3월2일 국회에서 폐지되었다. 기나긴 시간 호주제 폐지운동에 함께 했던 사람으로서 가슴에 묵은 체증까지 다 내려갈 정도로 기분이 좋아 주변분들과 함께 승리의 쾌재를 불렀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 이태영 박사가 가족법개정을 요구한 지 50여년의 세월, 여성단체가 부모성 함께 쓰기운동을 전개하며 호주제 폐지운동을 전면전으로 선언한 지 9년만의 일이다. 이 긴 세월 동안 여성들이 또 호주제 폐지를 지지했던 남성들과 함께 시민연대를 구성, 전국 릴레이 캠페인을 벌이면서 호주제 폐지 청원, 호주제 위헌 소송, 호주제 피해 사례 신고접수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호주제 폐지 운동을 전개하여 대다수 국민들의 공감을 얻었고, 이를 통해 호주제도는 우리 가족 역사에 영원히 뿌리내릴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이 해체된다느니, 전통적인 미풍양속이 파괴된다느니, 가족의 뿌리가 없어진다느니 하면서 시대를 거스르는 관념적 말만을 되풀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오늘 21세기 가족문화가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지 또 얼마나 다양해지고 있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거나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질서 만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개정된 민법은 2008년 1월부터 시행된다. 호적법을 대신할 새로운 신분등록법을 만들고, 국민 개개인의 신분기록 및 공시 시스템을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호주가 중심이 되어 나머지 가족들을 기재하던 현행 호적과 달리, 본인이 중심이 된 새로운 등록부로 대체된다. 즉 국민 개개인이 각자의 신분등록부를 갖게 되며, 본인의 출생, 혼인, 입양 등의 신분변동사항과 부모, 배우자, 자녀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기본 인적사항이 기재된다. 따라서 누구나 독립적으로 본인의 신분등록부를 갖게 되므로 아버지, 장남, 장손자 순서로 이어지던 호주승계가 사라지고, 입적?제적?전적 등 호적을 옮기는 일이 없어진다.
또한 자녀들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성을 따른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부부가 혼인신고시 협의하면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도 있다. 재혼한 가정의 아이도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새아버지의 성을 따를 수 있게 된다.
이런 실질적인 변화를 넘어서서, 현시기 호주제도 폐지의 가장 큰 의미는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출발선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호주를 없앤다는 것은 공동체의 중심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하나였던 중심을 여러 개의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담고 있다. 하나의 중심에 종속된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주체가 되는 것이다. 개개인의 권리가 많아진 만큼 자기결정권에 대한 책임이 높아지고, 민주적 의사결정이 중요해진다. 이렇게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속에서 공동체 자체는 평등해지고 민주적으로 변화하게 되고, 어느 일방의 희생이나, 성별 또는 연령 등으로 인한 차별이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신분등록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감시를 놓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개인의 너무 많은 정보가 국가권력에 의해 집중되고 통제되지 않도록 하여 개인의 정보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다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기재내용 중에 다양한 차별을 낳을 요소(남녀차별, 연령에 따른 차별, 지역차별 등)가 있는 기재 내용들이 있다면 꼼꼼이 검토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보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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