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시장 개방...웃지만 우는 농심

10월 5일부터 부안군내 총 8개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일제히 시작된 수매 첫날은 예년에 비하여 매우 한산하기만 하다.

농업기술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부안군 올해 벼 작황은 평년보다 못하지만 작년보다는 훨씬 좋다는 분석이다. 이를 반영하듯 계화농협 미곡처리장에서 등급판정을 위해 나락상태를 살피는 검사관 김동섭(31)씨는 “올해는 일조시간이 늘어 나락 품질이 좋아 1등품 이상의 벼가 아주 많다”고 금년 쌀농사 상황을 한 마디로 설명했다.

그러나 풍년에도 불구하고 쌀시장 개방과 내년 추매수곡제 불투명 등 여러 문제가 농촌에 덮치면서, 수매풍경은 마냥 밝지만은 않다. 올해 추곡 수매에서 가장 큰 변화는 정부수매 가격인하와 수매량의 감소다. 부안군청 발표에 의하면, 올 산물벼 수매가격(40kg 기준)은 특등 5만9천940원, 1등 5만8천20원, 2등 5만5천450원이며 3등품은 4만9천350원으로 지난해보다 4%로 인하되었고, 수매 물량은 지난해보다 5.2%가량 줄어든 16만7천480가마다.

계화에서 총 17필지의 쌀농사를 짓는다는 김영택(63)씨는 3필지 수확량만 수매하고 나머지 14필지의 벼는 시중가격으로 팔 수 밖에 없다며 수매가보다는 수매량의 감소에 불만을 터뜨렸다. 시중가격은 수매가격보다 싸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가격변동이 너무 심해서 농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위험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일주일 사이에 kg당 1451원 하던 것이 1370원으로 떨어졌다”며, 농민들 대부분이 가격이 떨어지기 전에 쌀을 팔기를 원한다고 한다. 따라서 같은 시기에 홍수출하 되고 가격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음을 김씨는 지적했다.

정부의 미곡처리장 대형화 유도 정책으로 영세 미곡처리장들이 다 사라져가는 것도 예년과 다르다. 도시의 대형 마트 때문에 소규모 상점이 없어지는 것처럼 소규모 정미소가 대부분 문을 닫고 현재에는 농협 미곡처리장과 극소수 대형화된 개인 미곡처리장만 남아있다.

그러나 농민들에게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고통은 미래에 대한 불투명이다. WTO의 쌀시장 개방 압력으로 내년부터 추곡 수매제가 폐기될 경우, 농민들에게 한 해 동안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수확의 즐거움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주름 잡힌 이광환(61)씨의 얼굴에서 작은 미소를 내보인 것은 검사원으로부터 3톤가량의 나락을 1등급으로 판정받은 직후였다. 그러나 이씨는 “금년에는 날씨가 좋고 병충해도 없어 수확량도 많고 벼 품질이 좋았는데 내년에는 어떨지 모르겠어. 수매도 없어진다고 하던데... ”라며 이네 긴 한숨을 내쉬었다.

수확의 기쁨으로 잠시 짓는 농민의 미소조차도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김일호 기자 ihkim@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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