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불신 깊어 '반신반의' "4공구 터야 먹고 살수 있다"

“100만원이 없어서 수협에 갔는데 신용불량 걸려서 못 빌린다고. 옛날 같으면 누구한테 빌리도 안 해. 바다 한번 나갔다 오지 뭐허게 넘(남)한테 아순 소리혀.”
채아무개(57) 씨는 최근 수협에 신용대출을 하러 갔다가 퇴짜를 맞았다. 서류작성을 하고 집에 와서 있으니까 신용불량이라며 연락을 하더라는 것이다. 1억원을 호가하는 배의 선주인 채씨로서는 자존심이 상할만도 하다.

문제는 채씨의 뭉개진 자존심만이 아니다. 오히려 “몇 개월 동안 놀다보니까 돈이 없어서 대출을 받을 정도”로 어민들의 살림살이를 수렁으로 내모는 상황이 더 위험하다. “몇 억씩 투자해가꼬 빚만 졌지. 일 나간지 두 달 됐어. 맨날 여그서 놀고 있지. 선주들 열이면 아홉은 빚쟁이여.”

그의 말대로 1억원이 넘는 배를 놀리는 것은 비단 채씨뿐만이 아니다. 계화도 선주회 사무실에 모여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들 그렇다. 홍성준(39) 씨의 말을 듣다보면 황당하기까지 하다. 열심히 일을 하면 할수록 적자규모가 커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엊그제 (조업을) 나갔다 왔는데, 한번 나가는 데 기름이 2드럼 들어가. 1드럼에 8만2천원인 게 16만원이잖아. 그날 딱 16만원 벌었어. 나 말고 같이 나간 사람 일당 줘야지, 그날 나갔다가 28만원짜리 기계부품 하나 고장났지, 30몇만원 적자 났어. 어찌된 것이 더 어거지 쓰고 하믄 더 적자가 나”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어민들은 한 목소리로 지난 2003년 6월에 막힌 4공구 방조제를 원흉으로 지목한다. 박용진(55) 씨의 말을 들어보자. “작년까지만 해도 겨울에 이렇게 놀지를 않았어. 개불을 잡아도 평균 100만원은 벌었지. 노랑조개, 동죽이 널려 있지. 4공구 막고 나서 순식간에 변한 거여. 이렇게 되는 데 딱 1년 걸리더만.”
이쯤되니 최근 서울행정법원의 조정권고안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이다.

한쪽에서는 환영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의구심이 있는 것이다. 4공구를 트지 않으면 어민들이 살아갈 길은 여전히 막막하다는 게 연안어민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이 상태에서 4공구를 트지 않으면 물이 돌지 않아 갯벌이 썩어간다는 것이다. “한 여름에 작업하면서 뻘을 떠보면 그 전에 없던 냄새가 나. 만경강 위쪽으로는 망가졌지.”

농림부와 전라북도에 대해서는 육두문자가 실려나온다. “실질적으로 체험 한번 안 해본 놈들이 의자에 앉아서 팬대만 잡고 학술적으로 관광객 몇 만명 온다네 어쩌네 그려. 썩은 냄새가 풀풀 나는 디(곳)에 어떤 사람들이 와. 여그 썩는 것은 둘째 문제고, 막으면 서해안에서 나는 물고기가 없어져. 산란장이 여근데 막아서 어쩔라고 하는지, 멍청한 놈들. 이것이 농림부에서 하는 정책이고 정치하는 놈들 정책이여.”

박용진 씨는 해수유통과 연륙교에 대한 비전도 제시했다. “4공구를 터서 다리 놓고, 가력도 안 막은데 다리 놓으믄 둑으로만 쌓는 것보다 훨씬 낫어. 만경강 망둥어 낚시 하느라고 발디딜 틈이 없듯이 여그에 다리를 놓으면 사람들 엄청나게 올 것이네.”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거전갯벌’. 만경강과 동진강이 합수되는 지점이어서 한때 최대의 황금갯벌로 유명세를 떨쳤던 곳이다. 간척사업 뒤로 어업을 포기하고 농업과 상업으로 전환한 가구가 많아 현재는 어민인구가 많이 줄어든 상태라고 했다.
직업에 따라 주민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한때 갯벌에서 맨손어업을 하다가 보상금을 받고 농업으로 전환했다는 한 주민은 “갯벌에 나가기만 하면 항상 하루에 5만원 넘게 벌었는데 보상은 500만원 받았다”며 “개발이라도 있어야 자식들이 먹고 살 것인데”라고 말했다.

갯벌에서 떠밀려 왔지만 농사일을 해도 소득이 안 나오니 새만금 사업을 하면 지역발전이 되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농사와 고기잡이를 같이 하거나 갯벌에 나가 조개를 캐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주민들의 입장은 다르다.

심포에서 고기잡이를 해오다가 현재 횟집을 운영하는 조아무개(57) 씨는 법원의 조정권고안에 기대가 많다는 뜻을 내비쳤다. “어민 입장에서는 아무리 보상을 해줬다고 해도 이직이 힘든 게 현실이에요. 바다가 평생직장이었는데 보상도 제대로 안 됐고, 농업으로는 소득도 안 되니까 다시 바다로 뛰어들 수밖에 없어요. 지금 어민들은 새만금 공사가 계속되면 살 길이 막막해집니다. 이주비가 보장되지 않으면 해수유통을 시켜서라도 갯벌을 보존해야죠.”

빚 걱정에 한숨만 쉬고 있는 어민들이 그나마 희망을 느껴볼 시간도 주지 않고 국무총리와 농림부가 재판부의 조정권고안에 대해 이의신청을 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국가적인 사업이라는 이유로 누가 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가. 누가 이들에게 희생할 의무를 지우고 개발의 권리를 독차지하는가.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정치권의 공약이 난무할 동안 이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삶이 누더기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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