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가래, 빙빙도는 물레에도 세상의 이치 오롯이 담겨


부안은 고려청자의 주요 생산지였다. 이후 고려청자는 분청사기로 발전하게 된다. 분청사기는 흔히 ‘개밥그릇’이라 부를 정도로 백성들이 자주 사용하는 그릇이었다. 그래서인지 분청사기에는 파격의 미학이 깃들어 있다.

자유로운 정신과 소박함, 천진성이 구김살 없이 표현된 분청사기에는 실로 한국적인 맛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고리타분한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분청사기의 모양이나 문양들을 보노라면 어떻게 이토록 현대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현대적’이란 느낌은 자유로움에서 출발할 것 같다.

기자도 ‘자유로움’을 가지고 생활자기를 만드는 일에 도전해 봤다. 기자가 만드는 생활자기는 사무실에서 연필 등을 담아놓는 붓통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종관 작가가 점토를 둥글게 말아 올려 작품을 만드는 코일링(Coiling) 기법 시범을 먼저 보인 뒤 기자도 붓통 만들기에 도전했다. 이 과정은 작품의 기본적인 모양을 만드는 과정으로 성형이라 불린다.

먼저 점토를 가는 줄을 이용해 작은 덩어리로 떼어내 회전판에 올려놓은 뒤 손바닥으로 두드려 붓통의 바닥면을 만들어야 한다. 흙을 손바닥으로 두드릴 때마다 회전판이 돌아가기 일쑤다.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것도 힘과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어느 정도 바닥면이 모양을 갖추면 바닥면을 다듬은 뒤 붓통의 크기에 맞게 동그랗게 잘라낸다.

그 다음은 코일링 작업이다. 점토를 길고 둥글게 밀어 흙가래를 만든 뒤 바닥면 위에 쌓아올리는 공정이다. 흙가래는 모양이 가래떡과 흡사하다. 기자가 만드는 흙가래는 자꾸 한쪽이 뚱뚱하고 한쪽이 가늘어진다. 옆에서 이종관 작가가 흙가래를 몇 개씩 말아 올리는 동안 흙가래 하나를 만들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원하는 높이만큼 흙가래를 쌓으려면 두께가 일정해야 하는데, 점점 가늘어지거나 턱없이 두꺼워지기 일쑤였다.

 

 

 

 

아뿔사, 결국에는 중간이 뚝 끊어지고 만다. 흙가래를 만드는 것 역시 적당한 힘과 균형이 필요하다. 다시 바닥면의 가장자리에 흙가래를 빙빙 돌려가며 쌓기 시작했다. 벌써 붓통의 높이만큼 흙가래를 쌓아올리고 마무리까지 한 뒤 화장토를 칠하고 있는 이종관 작가가 부럽기만 하다. 나는 어느 세월에 쌓아올릴까......

급한 마음에 흙을 말아 올리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재떨이 만드세요?” 하고 묻는다.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붓통을 만들려면 한참을 더 쌓아야 하지만 재떨이로 사용하려면 지금 쌓아올린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예~” 라고 대답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 뒤 “뚜껑도 만들어야겠네요?” 하는 말이 돌아온다. 아~ 이를 어쩌란 말인가. 손잡이까지 달린 뚜껑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혹을 떼려다 붙인 꼴이 되고 말았다.

작품의 기본 형태를 만드는 성형작업을 마치고 나면 장식을 한다. 무늬나 디자인 등을 새겨넣는 일이다. 도자기의 모양을 만드는 작업은 장식까지가 끝이다. 도자기를 말리고 초벌구이와 색칠, 재벌구이를 해서 완성품이 나오기까지는 20일가량이 더 걸린다.

이제는 물레를 이용한 도자기 제작 체험이다. 기자가 도자기 제작체험을 간다고 했을 때 어김없이 영화 ‘사랑과 영혼’ 이야기가 나왔다. 영화 속에 남녀 주인공이 물레를 이용해 도자기를 만드는 장면이 떠올랐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영화 속의 남녀주인공은 도자기를 만들었다기 보다 사랑을 만들었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이지만 말이다.

 

 

 

 

 

 

이종관 작가가 먼저 시범을 보이면서 겁부터 주었다. 물레를 이용해 균형을 잡는 데만 일주일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붓통을 만들려다 재떨이로 전락한 실수를 물레를 이용해 만회하려던 나의 잔머리가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팔을 걷어붙이고 물레를 돌리는 의자에 앉았다. 자동차 가속페달처럼 생긴 쇠뭉치를 발로 누르자 물레가 빙빙 돌아가기 시작했다. 도예체험을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느끼는 것은 적절한 힘과 균형이었다. 물레는 가장 높은 균형 감각이 필요했다. 마치 빙빙 돌아가는 복잡한 세상에서 균형 있게 살아가라는 듯.... 처음에는 옆으로 비뚤어지고 중간부분만 오목해지는 등 형태가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균형을 잡는 연습을 하다가 그릇 만들기로 들어갔다.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가운데로 모으고 그릇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국 그릇을 만들지, 찻잔을 만들지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만들고 나니 그릇모양이었던 것이다. 비록 크기가 밥을 담기도, 차를 마시기도 애매한 구석이 있었지만 물레를 이용해 만들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도예방 한쪽에 쌓여있던 흙이 찻잔과 그릇, 접시 등의 형태를 갖추는 과정은 오묘하고 뿌듯한 느낌을 준다. 취미로 도자기공예를 하는 사람들은 흙을 만지노라면 마음이 편해지고 차분해진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들뜬 마음 또한 차분히 가라앉혀 주어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는 여유까지 생기게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도자기를 빚으며 마음까지 빚어보자고 하지 않았던가.

흙이 그릇으로 되기까지는 적당한 힘과 균형, 신중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이 필요하다. 도자기 공예를 배우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도자기 제작과정  
 
1.성형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준비된 흙을 이용해 작품의 기본형태 만듬.
2. 정형 :성형한 작품을 다듬는 과정
3 건 조 : 밀폐된 실내 건조실에서 서서히 건조.
4 장 식 : 작품에 무늬나 도안을 그려 넣는과정.
5 초벌구이 : 애벌구이라고도 하며 섭씨 800도를 전후.
6 시유 : 유약을 입히는 과정.
7 재벌구이 : 도자기 제조공정 중 마지막 과정으로 섭씨 1,300도를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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