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 스님

부안은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가보지 못한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신문의 발간에 자신의 분을 헤아리지 못하고 축사를 쓰겠다고 한 이상한 연들은 무엇일까.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서해안의 작은 도시-부안에서 일어났던 부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 없이 많은 채널로 들어왔다. 그러나 기실 극적인 픽션과 이해관계의 카테고리 속에서 ‘비추는 것만을 비추는 언론’에 의해 전해진 부안 사태를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우리가 본 것과 실체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과 , 개발과 발전의 논리에 아픔을 겪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이 부안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안문제가 부안이라는 지역의 문제라는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멀리서 스쳐가며 보고 들었던 부안의 소식은 안타깝지만 함께 행동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건과 드라마의 하나로 다가 왔고 그나마 최근에는 부안의 승리도 부안의 패배도 조금씩 기억 너머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런 내게 부안 운동의 감동은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된 ‘부안사람들’이라는 작품을 통해 뒤늦게 찾아왔다. 문규현 신부님께서 문화행동가로 참여하고 새만금과 핵폐기장 운동에 함께했던 아마츄어 작가들이 참여하여 만든 “부안사람들”이라는 작품은 잊혀져가고 애써 눈길을 피했던 부안의 실상과 감동을 이제까지와 다른 방법으로 전하고 있었다.

우리는 벽면 가득 걸린 부안 사람들의 모습에서 바다와 땅을 일구고 업을 꾸려나가는 부지런하고 억척스런 일꾼들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는 부안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땅을 노래하고 스스로 그 땅의 주인이 되어 걸어가는 아버지가 가는 길을 보았으며, 바닷바람을 이기고 굳세게 아이를 기르는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분들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 권력과 조직의 실체를 이해했고 이익사회의 그릇된 가치관에 분노했으며 전도 된 사회상에 대항하고 현실이 가르친 야만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고장을 지키고 고향에 대한 사랑을 불태웠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 눈빛을 통해 읽어내려 갈 수 있었다.

또한 역사의 현장에서 벗어나 순박하게 살고 있던 사람들이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 불꽃이 되어 타오르는 눈빛들 속에 배여 있는 남도의 애환도 함께 느꼈다.

이제까지 걸어 온 많은 아픔을 작은 결실로 부안독립신문이 발간된다고 한다. 부안사람들이 보여준 분노와 슬픔과 애향심이, 처절함을 거름으로 묻고 새로운 싹이 되고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는 일을 부안사람들이 꿈꾸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새롭게 시작되는 부안독립신문은 호미와 쟁기를 버리고 깃발을 들었던 부안 사람들에게 그들이 태어난 땅과 바다로 돌아가고 그들의 어버이와 자식들에게로 돌아갈 길을 만들어 주는 신문이면 좋겠다.

세상을 일으키는 힘은 가난한 땅을 사랑하여 버리지 못하고 묵묵히 일하는 부지런한 손길이며 이름 없는 어부이며 조개를 잡는 아낙이며 늦은 시간까지 점포 문을 열어놓고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저자거리에 앉아있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것을 일러주는 신문이면 좋겠다.

부안을 떠나 도시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부안에서 기다리고 계신 할머니의 소식처럼 돌아갈 곳을 일러주는 신문이 되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고 마을과 마을의 아름다운 소식이 배달되는 지면이 점점 늘어나도록 세상을 바꾸는 신문이면 좋겠다.

거친 숨결을 고르고 시작하는 부안독립신문이 메마른 역사에 피어나는 신화가 되기를 기원하며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