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변호사 발제문 부안 : 주민자치, 지역발전, 지역운동의 새로운 모델이 되어야

■ 부안이 가르치고 시사하는 것들
-주민자치의 새로운 희망
지난 2·14 주민투표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사례였다. 그리고 단 하루만에 인구 7만에 가까운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주민투표를 만들어낸 사례도 세계적으로 찾아 보기 어렵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주민투표 사례 에 하나인 마키정 주민투표만 해도 부안과는 비교하기가 어렵다. 일본에서 1995년 원전건설과 관련한 자주관리주민투표를 실시했다는 니이가타현 마키정의 경우에는 인구 규모가 부안에 비해 1/2수준(인구 3만800명)에 불과한데도 2주일 동안 투표해서 45%라는 투표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부안은 단 하루만에 72.04%라는 투표율을 기록했고 많은 주민들의 참여에 의해 투·개표의 전 과정이 일반 선거에 준해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또한 주민투표 이외에도 부안은 주민자치를 지향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2003년7월 군수의 독단적인 핵폐기장 유치신청 이후에 사실상 부안에서는 ‘명목상의 군수’는 있되 ‘주민의 대표자로서의 군수’는 없는 공백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잘못을 저지른 대표자를 임기중 에라도 해임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도가 도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다수의 군민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군수가 자리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안은 주민소환제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그리고 주민소환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권력의 공백’이 생기고 있고 그것을 주민들이 채워나가고 있는 셈이 되고 있다.
-전환기 시민운동에 새로운 충격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부안은 특별하다. 현재 여러 시민사회운동 중에서도 시민운동은 전반적으로 전환점에 서 있다. 내·외부로부터 여러 가지 비판에 직면해 있으며 새로운 방향모색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그런 점에서 부안항쟁이 시사하는 것이 크다.
첫째, 부안에서는 생명, 평화, 인권이라는 지향점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운동이 진행돼 왔다. 주민들도 그러한 지향점에 공감하고 있다. 이처럼 아래로부터 대안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지금까지 한국의 시민운동이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둘째, 부안은 운동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대안을 창출해 왔다. 단순한 반대운동이 아니라 ‘반대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태양열발전소도 그러한 예이다. 시민운동이 운동과정에서 대안을 창출해내지 못하고 현안에만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 부안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셋째, 부안은 여러가지로 주민참여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많은 시민운동단체들이 명망가나 전문가, 활동가 중심으로 흘러가 일반 시민대중의 참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개인과 모임들이 참여하고 연령대나 성별 등에 관계없이 참여한 부안에서의 운동과정은 시민운동 특히 지역운동에 시사하는 것들이 많다.
■ 부안에 거는 기대와 소망
-진정한 민주주의, 주민자치의 고장으로
대표자인 군수가 다수 군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핵폐기장을 유치 신청하는 것을 보면서 부안 군민들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신뢰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대의제 민주주의 자체가 그런 위험을 안고 있다.
지금 군수도 선거 때까지는 좋은 군수가 될 것처럼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군수였다. 그러나 핵폐기장 문제를 겪으면서 “참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민주주의를 어느 누구에게 맡겨 버려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앞으로 부안은 어떤 사람이 대표자가 되어도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는 그런 민주주의를 구현해 나가야 한다. 이런 민주주의를 ‘자치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고, ‘주민자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주민소환제 도입 등 국가 차원의 제도정비도 필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제도만 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 스스로 의사를 모으고, 대표자를 감시하고, 문제가 있을 때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주민들에게 있느냐이다. 그런 점에서 부안은 그동안의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통해서 그런 자치역량을 키워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좋은 대표자를 뽑아서 그에게 맡겨놓자’는 생각을 부안주민들이 완전히 버리고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일상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주권자가 주권자로서 역할을 하지 않는 이상 대표자는 항상 타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지금의 군정감시와 의정감시 활동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그와 함께 주민들의 군정참여를 보장하는 여러 조례의 제정(정보공개조례, 시민참여기본조례, 주민참여예산조례, 마을만들기 지원조례 등)도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군정에 관한 모든 정보들이 제때에 주민들에게 공개되고 모든 정책결정과정이 투명해져야 한다. 지금 다른 지역에서도 예산이나 정책결정과정에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부안에서는 이런 시도들을 조사하고 연구하여 부안 나름대로의 모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특히 부안에서는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와 행정을 만들어 나가고, 지역사회의 대안적인 발전을 위해 주민들의 역량을 이끌어낼 수 있는 대표자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선거에서 부안주민들은 다시는 독단적인 대표자, 개발을 내세워서 지역사회를 분열시키는 대표자는 나올 수 없도록 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지역발전의 모델로
김종규 군수를 비롯해서 핵폐기장 유치를 주장하는 측은 부안주민들의 노력에 의한 발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책사업 유치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외부의존적 발전만이 살 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부안군민들은 이러한 주장에 반대해 왔다. 그렇다면 부안주민들은 그런 ‘외부의존적 발전’이 아닌 ‘지역내부의 힘에 의한 발전’을 시도해야 한다. 핵폐기장 뿐만 아니라 새만금도 마찬가지이다. 국가가 어떤 사업을 하면 그것을 통해 지역발전이 될 것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실제로는 지역에 그만한 혜택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들이 많다.
강원도 폐광지역인 사북과 고한지역에서는 폐광대책의 일환으로 카지노를 유치했다. 그런데 카지노 유치로 인해 지역주민들의 삶이 나아졌느냐는 질문을 하면 “그렇다”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카지노는 유치되었지만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오히려 아이들이 카지노로 인해 나쁜 영향을 받고 지역주민들 중에 도박으로 돈을 탕진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생각했던 것만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안 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지역의 발전동력은 그 지역이 가진 자연적, 사회적, 산업적, 문화적 자원과 지역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부안이 가진 농업, 어업, 문화, 관광 자원들과 부안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부안 발전의 기본동력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떠나가지 않는 부안, 사람들이 돌아오는 부안이 될 수 있느냐이다. 청소년들이 미래에도 살고 싶은 부안이 될 수 있느냐이다. 청소년들이 미래에 살고 싶은 부안이 되지 못 하면 부안에는 부안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과정에서 많은 주민교육이 있었던 것처럼 부안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도 많은 교육과 토론 기회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이것이 되어야만 진정으로 핵폐기장이 근본에서부터 백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핵폐기장의 배후에 깔려있는 것은 지역 스스로의 힘으로 발전전망을 세울 수 없다는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생각과 그것을 이용하려는 정치인들, 관료들, 한수원이다. 이런 생각을 극복해야만 부안의 새로운 미래가 열릴 수 있다.
-다양한 지역운동과 사회적 약자들의 참여가 활성화된 부안으로
주민자치 실현이나 지역발전에는 다양한 경로와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참여가 활성화된 부안이 되었으면 한다. 여성의 참여, 청소년들의 참여, 장애인들의 참여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특히 청소년들의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참여는 최근 국제적인 추세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참여는 지역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부안에 사는 청소년들은 지금도 부안에 사는 주민이고 앞으로 부안에 살 주민들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부안 지역에 좀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지역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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