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에서 세계명문 중 하나인 예일대의 입학자격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난다. 보통의 대학들이 요구하는 SAT점수가 같은 합격자들 사이에서도 200점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비록 학과 성적이 좀 떨어지더라도 교사가 학생의 인성과 사회 기여도에 대해 강력하게 추천하여 합격한 경우였다. 이 학생은 주 4회 이상 규칙적으로 노인 환자들을 위한 봉사와 후배 어린이들을 위한 학습도우미 역할을 하며 지역사회를 위한 자원봉사도 아끼지 않는 학생이였다.

대학에서는 이 학생의 입학을 허락한 후 방과 후 개별적으로 나머지 공부를 시켜서 부족한 학과 공부를 따라올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었다. 학업성적이 부족한 학생을 입학시키면 수업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여러모로 학교 측의 어려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행하는 학교가 예일대 뿐만이 아니였다. 이는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우리의 교육현실은 획일화된 틀에 맞추어 학력 위주의 우수한 인재만을 고집하는게 전통적이 관례가 된지 이미 오래다. 공부를 잘하면 성격이 모나고, 사회성이 턱없이 모자라도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는 더 나아가서 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돈이나 학벌, 권력이면 모든 게 통하고 이해가 되는 세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지위에 굽신 거리긴 해도 진정으로 마음으로부터 존경하는 지도자를 찾기 힘든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계의 우수한 대학들이 “인성이 제대로 된 사람이 결국 훌륭한 사회인이 될 수 있다”며 옳은 인성을 강조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깊이 주목해야한다. 혹시 내 아이가 공부에만 초점을 맞추며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은 아닐까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 하나 좋으면 그만이지.”하며 학생의 본분인 학과 공부를 게을리 해서도 아니될 것이다. 사람 됨됨이는 훌륭한데 실력이 없어서 제 역할을 못해도 아니되고, 실력은 출중한데 인간미가 없는 성과 위주의 사람이 되어서도 아니될 것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우리 자녀들을 책 속에 맡겨보면 어떨까?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던 세종대왕은 글 모르는 백성의 서러움을 헤아리며 한글을 만들기에 이르렀고,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아브라함 링컨은 천대받는 흑인들의 눈물얼룩진 삶을 가슴 아파하며 노예해방을 이뤄냈다.

나만 혼자 우뚝 솟아서 군림하는 실력자가 아니라 다른사람들의 아픔을 보듬으며 같이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우리에겐 필요한 것이다.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9).” 실력과 인성을 고루 갖춘 글로벌한 자녀양성을 위해 우리의 자녀들을 좀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열심히 품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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