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 연휴는 사흘에 불과해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다. 게다가 그 중 이틀은 토·일요일이니 엄밀히 말하면 하루 더 ‘노는’ 셈이다. 명절의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지만 그래도 여전히 추석이며 설 등 민족 대명절이 돌아오면 마음이 설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만큼 관습적으로 마음 속에 각인된 명절 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 연휴는 기간이 짧아 역귀성도 많이 예상된다. 고향 찾아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느라 피곤할테니 차라리 고향 지키는 이가 서울이며 대도시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찾아갈 자식 있는 부모면 좀 낫지 싶다.

찾아갈 부모와 고향 없는 이도 불행이지만 자식이 없거나 자식이 있어도 찾아갈 일 없는 노부모에게 추석은 그저 상대적인 쓸쓸함만 더 크게 만드는 ‘고얀’ 시기다. 이런 문제를 공감한 것인지 추석이 가까워오자 군이며 사회단체며 개인들이 이웃을 찾는 발걸음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소외된 이들의 깊은 아픔을 하루 이틀 위문 방문으로 어찌 해소하겠냐마는 그래도 그런 온정이 있기에 추석을 맞는 이들의 마음이 한결 따뜻해지고 있다.

두 가지를 생각해본다. 하나는, 그러한 위문과 온정이 일시적이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행여 봉사활동으로 생색내려는 이들까지 선행을 베푸는 이들의 범주에 들어 함께 칭찬받는 불공평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일종의 관례적인 ‘행사’, 요식적인 자선이 되지 않아야 하고 특히 군에서는 마치 제철에 맞는 ‘행정업무’ 처리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별한 시기에 맞는 특별한 복지, 이름하여 ‘추석복지’도 필요하지만 사실은 그러한 추석 복지가 필요하지 않은 상태, 그러한 사회적 상태가 바람직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소외된 이들의 소외감을 피상적으로 어루만져주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소외 자체를 해소하기 위한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당장 해결하진 못해도 적어도 고민의 지점은 그곳이어야 한다.

또 하나, 추석이 다가오자 이른 바 부정적인 의미의 ‘떡값’이 돌고 있는 징후도 발견된다. 본래의 떡값은 ‘명절 보너스’ 개념이나 지금은 ‘뇌물’에 가까운 의미로 쓰이고 있다. 물론 선물과 뇌물은 종이 한 장 차이라 추석‘턱’을 내는 것을 죄다 뇌물성 떡값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하지만 친분이 있는 개인 간의 선물이 아닌 업무 관계나 이해관계에 있는 미묘한 사이에서의 추석선물은 그 누가 봐도, 척보면 ‘잘 좀 봐주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언론 또는 기자를 상대로 한 추석선물은, 그것이 더구나 고가의 ‘한우 세트’라면 사실상 뇌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행정과 언론의 덕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사업자가 그들을 상대로 돌리는 떡값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누구나 안다.

공익을 위해 애쓰는 공기(公器)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의미로 선물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떡값은 진정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풀어져야 할 것이다. 선물은 돌아오는 것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추석 경기가 안좋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정국도 어수선하고 탈도 많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 그대로 마음만이라도 풍성한 한가위가 되길 바란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