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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리고 쉼표] 닭 세마리와 이웃
며칠 전 사돈댁에서 닭 세 마리를 가져왔다. 작년에 키우던 닭장을 새로 정비하고 닭을 넣었어야 하는데 밤새 묶지도 않은 채 두었더니 아침 문안 인사를 갔을 때 한 마리도 없었다. 집 나간 닭 생각을 하니 괜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서성거려졌다.

평소 좀처럼 동네에 나갈 일이 없었는데 모처럼 안 보이는 닭을 찾으러 동네에 나갔다. 담 넘어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담 하나 사이의 돌아가신 할머니가 사시던 빈집으로 갔다. 잘 다듬어진 채소밭 옆에 할머니가 쓰시던 요강이 엎어져 있었다. 자식 하나 없이 여동생과 함께 살면서 그 여동생 먼저 수년 전에 저세상으로 보내고 혼자 사시던 그 할머니는 작년 봄 세상을 떠나고, 그 옆집 아저씨가 채소밭을 가꾸면서 빈집 같지 않게 할머니가 계실 때처럼 깨끗이 해놓으셨다. 아직도 조그마한 장독대 옆에는 할머니가 안 계신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맨드라미와 채송화가 피어있다. 저절로 피고 지는 작은 꽃씨보다 못한 것이 사람의 목숨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어제 온 비에 씻겨 아직도 윤기 흐르는 장독대의 반지르르한 모습에 말씀 없으시던 그 할머니의 잔잔한 걸음걸이가 보이는 듯하다. 우리 집 쪽으로 떨어지는 밤나무의 알밤을 마치 내 것인 양 하루아침에 열 개씩도 줍는 쏠쏠한 재미를 보았으면서도 내의 한 벌 사드리지 못한 후회가 가슴을 울린다. 지금 비록 먼지 낀 마루지만 그 할머니는 그 마루에 앉아 ‘모가지가 길어 슬픈 사슴’처럼 그 누군가를 한없이 기다렸을 것 같다.

나는 괜스레 쓸쓸해진 마음을 안고 다시 골목길을 돌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상호엄마, 동네를 다 나오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부녀회장네 집에 가니 오이가 주렁주렁 많이도 열렸다. 오이 안 심었으면 따준다며 그만 하라고 사양을 해도 비닐봉지 가득 따주면서 자기 없어도 따다 먹으란다. 탱자나무 줄기타고 열려 있던 예쁜 애호박도 따주고. 풋고추와 꽈리고추도 너무 크면 맵다고 주섬주섬 따 주었다. 닭 찾으러 다니던 그날 아침 시장에 다녀 온 것만큼이나 수확이 컸고 노란 된장에 찍어 먹은 고추 맛은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웬일로 이렇게 동네를 나왔느냐고 반겨 주던 그분들이 고마웠고 그분들과 가깝게 지내지 못한 것에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금년 봄에 이사 온 앞집에 가서 닭을 찾아보는 것도 미안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간단히 차라도 나누며 앞뒷집의 길을 트고 싶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 날까지 이어져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인님 계시느냐는 나의 물음에 방안에서 누구냐고 묻기에 뒷집 사는 사람이라고 얘기 하고 그 남자 분의 얼굴은 보지도 못한 채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분 말에 의하면 어젯밤 늦게 들어오는데 닭 세 마리를 보았단다. 혹시 오늘 밤에도 닭이 오면 좀 알려 달라고 부탁하고 오면서 내가 먼저 기회 잡아 진즉 면식을 터놓지 못한 상태에서 이렇게 아쉬운 부탁을 하게 된 처지가 더욱 더 후회스러웠다. 깜깜한 밤이 되어 앞집 사는 젊은 댁이 닭 세 마리가 어제처럼 고추 밭에 있다고 알려 주어서 드디어 닭을 잡았다. 날개 잡힌 닭들의 꽥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닭을 찾은 기쁨보다 무관심 속에서 지낸 이웃과의 관계가 왠지 가슴을 누르는 듯했다. 내가 먼저 손 내밀어 이웃과 더불어 서로를 챙기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스스로 약속을 했다. 틈틈이 시간 내어 동네도 한 바퀴씩 돌고 마을회관에도 들러 소중한 이웃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김영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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