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대통령으로서의 리더십은 무엇인가? 그의 리더십은 철저하게 박정희의, 박정희에 의한, 그리고 국민들의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속빈 껍데기 리더십이다. ‘장로’ 대통령이던 김영삼이 실정을 거듭하자 역사의 뒤안길에 널부러져 있던 박정희 모델이 보수 우파를 중심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외모만 모방했던 이인제나 개성 강한 이회창과 달리 내용까지도 박정희 리더십을 철두철미하게 추종한 MB는 마침내 대통령으로 등극하는 데 성공했다.

MB는 후보시절 이전부터 ‘제2의 박정희’로서 평가받으려 안달이었다. MB는 박정희처럼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독일의 MD운하를 방문해 ‘제2의 한강의 기적’ 운운했다.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닮았고, 성장우선 정책은 박정희 모델을 복사한 것이며, 정치를 소모적이고 국가발전에 장애로 보는 시각도 박정희의 정치관을 추종한 것이다. 또 낡은 토목공학적 국가발전 구상을 ‘소신’으로 밀어붙이려는 태도 또한 자신의 소신이 곧 국민의 의사인 양 다그쳤던 박정희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말단 주사가 할 일을 꼬치꼬치 챙김으로써 마치 자상한 어버이나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 또한 박정희의 모습을 흉내 낸 것이다.

MB는 스스로 ‘섬김의 리더십’을 내세웠다. 섬김의 리더십은 기독교계에서 예수의 리더십을 조명하며 등장한 개념이다. 장로인 MB에게 이것만큼 ‘새롭고, 구미에 맞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호뿐이다. MB는 예수가 말한 섬김의 철학이나 실천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다. 그의 리더십에서 섬김의 자세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그는 박정희를 제대로 모방했다. 박정희는 국민을 섬기지 않았다. 박정희에게 국민은 자신의 가르침과 시혜를 받는 대상이자 통제의 대상일 뿐이었다. MB, 그는 말한다. “미국산 쇠고기가 맘에 안 들면 안 사먹으면 된다”고. 내가 알아서 하니 너희들은 따르라는 식이다. 박정희가 자신의 정권 안위를 위해 끝없이 배후세력을 용공이라며 반체제로 몰아붙이고 조작했듯이, MB 역시 촛불집회의 배후를 밝혀내라고 각료와 참모들에게 윽박지른다. 잊혀졌던 그 시절 ‘공안’을 방불케하는 무차별적 폭력 탄압이 이미 자행되고 있다. 이보다 더 박정희를 닮을 수가 있을까.

MB의 또 다른 모토는 실용이다. 그 본질은 무엇일까. 그는 한 때 소위 ‘학생운동’을 했다고 자랑한다. 이로 인해 취업 길이 막히자 운동에서 타도의 대상이었던 박정희에게 선처를 바라는 편지를 보내 현대에 취직할 수 있었다고 한다. MB가 말한 실용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의 실용은 ‘내게 유리하게 하면 되고’에 불과하다. 즉 ‘개념 없는 이기적 실용’이라고 할 수 있다.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 하룻밤 묵는 것이 큰 외교적 성과인양 내세우고 박정희에게 그랬듯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최대의 은전을 입은 ‘최초의 한국 대통령’이란 걸 과시하는게 그의 ‘실용’이다. 쇠고기 협상은 MB정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한 단서일 뿐이다. 이런 무개념인 자를 대통령 자리에 앉힌 우리 국민은 참으로 민망하고 부끄럽고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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