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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반동의 꿈] 2. 신비의 땅 우반동, 반계수록의 산실이 되다
부안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활성화를 위해 매창별곡 연작에 이어 반계 유형원에 관한 글 ‘우반동의 꿈’을 4 차례에 걸쳐 보내드립니다. <편집자 드림>

글 싣는 순서
1. 실학 사상의 새벽을 연 반계 유형원
2. 반계수록의 산실인 신비의 땅 우반동
3. 반계수록에 실린 개혁 사상 (상)
4. 반계수록에 실린 개혁 사상 (하)


반계수록(磻溪隨錄) 번역본은 북한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 간행본과 충남대학교 고전연역회총서(古典演譯會叢書)로 나온 한장경 박사의 번역본 등이 있는데 필자는 후자를 참고하였다.

바디재 정상에서 바라본 우반동. 멀리 안개 속에 곰소 만이 보인다. 옥녀봉과 매봉이 좌청룡 우백호로 우반동을 감싸 안고 멀리 천마산을 안산으로 하여 한 눈에 보기에도 길지 중의 길지다. <황형준 기자>

아름다운 포구와 절경의 산수 우반동

변산은 병란과 기근을 피하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땅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명당이 우반동이다. 즉 반계 유형원이 기거하던 반계골이다.

우반동을 살펴보면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바디재에서 바라본 마을 앞은 툭 틔여 있어 들고 나는 조수간만을 볼 수 있으며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내를 장천(長天)이라 불렀다.

옥녀봉(432.7미터) 아래에 형성된 우반동은 상여봉(390미터)으로 연결되어 있고, 상여봉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남포리와 경계를 형성해 좌청룡을 이루고, 옥녀봉에서 내려온 한 줄기가 매봉(263. 8미터)을 만들어 우백호를 이루고 한편, 남쪽엔 안산으로 천마산이 있다. 천마산과 남포리 산 사이의 낮은 부분이 실개천을 이루는데 위에서 말한 장천이다. 주변의 산들에 둘러쌓인 분지는 풍수적으로 아주 길지(吉地)를 이루어 산수가 수려하고 비옥한 감춰진 땅으로 신비와 기적이 숨겨져 있는 듯한 형세를 취하고 있다.

반계서당. 유형원은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의 실학 사상을 펼쳐 보인 반계수록을 저술했다. <황형준 기자>

우반동의 산수가 낳은 사상과 문화

산과 바다와 기암절벽, 폭포, 강이 어우러진 선경(仙景) 속에서 허균은 그의 이념과 사상을 홍길동전으로, 반계 유형원은 반계수록으로, 박지원은 허생전으로 시대의 철학과 사상을 이곳 우반동을 배경으로 만들어냈다. 말하자면 17세기 중엽 조선후기 사상의 조류를 만들어낸 심오한 철학과 사상 그리고 그 실천적 모델로써 우반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부안의 여류 가객 이매창과 허균의 이루지 못할 사랑이야기가 있었고, 임진·정유왜란과 정묘·병자호란의 거듭된 병란 속에서 이곳 변산에는 많은 도적들이 할거했다. 명종 때에는 민노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서얼 차별 등으로 민심이 극도로 흉흉해졌다. 이에 더해 관리들의 가렴주구와 도탄에 빠진 국정의 난맥상은 체제에 대한 불만을 분출시켜 마침내 열혈남아이자 개혁사상가인 허균으로 하여금 이곳 우반동에서 홍길동전을 쓰게 했던 곳이다.

반계서당 안에 있는 연못. 가뭄 때도 마르지 않았다는 식수였다. <황형준 기자>

그리고 49세(1618년)로 처형당한 허균이 가고 35년이 흐른 뒤 1653년 반계 유형원이 이곳 우반동을 찾아든 것은 이 땅의 기운과 필연적인 뜻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배태한 땅 우반동을 살펴보면 바다에 인접해 있어 왜적의 침입을 수없이 받았을 것이고 이에 대한 마을 평안을 비는 유명한 우동리 당산제가 있다.

그리고 장천 상류까지 배가 닿을 수 있어 한양으로 실어나를 수 있는 수송이 편해서인지 도자기를 만드는 수십 기의 도요지가 발달해 있어 유명한 분청사기를 탄생시킨 땅이기도 하다. 또한 변산 4대 사찰 중의 하나인 선계사가 있었고 이곳에서 시작하는 선계폭포가 또한 웅장한 자태로 장천에 맑은 물을 흘러보내고 있다. 또한 군사상 요충지로써 배를 만들고 해군을 훈련시키던 검모포진(지금의 구진마을)이 있다. 그리고 우반동 부안 김씨들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종중 문고가 보관되어 있고, 또한 가까운 거리에 내소사와 월명암 등 종교적 성지들이 있는 곳이다.

선계폭포와 태조 이성계가 칼로 내리쳤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 <황형준 기자>

선조들이 말하는 우반동의 그 때 그 모습

그러면 우반동에 대한 옛 기록을 살펴봄으로써 17세기 중엽 우반동의 실제 모습을 더듬어 보자.

조선후기 동국여지지(東國與地誌)에 의하면 “변산(邊山)의 동남쪽에 있는 우반동은 산으로 빙 둘러싸여 있으며 가운데는 평평한 들판이 있다. 소나무와 회나무가 온 산에 가득하고 봄마다 복사꽃이 시내를 따라 만발한다”라고 했다.

조선중기 학자 권극중(1560~1614)도 “변산의 남쪽에 우반이란 마을이 있는데 아름다운 포구와 산수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라고 찬탄하고 있다. 실제로 우반동에 거주했던‘홍길동전’의 작자 허균(許筠 1569~1618)은 그의 친구 김청의 정사암을 중건하는 ‘중수정사암기(重修靜思菴記)’에서 우반동의 수려한 경치에 대해 아래와 같이 자세히 서술한다. “포구에 있는 꼬불꼬불한 작은 길을 따라 우반동으로 들어가자 시냇물이 옥구슬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졸졸 흘러 우거진 덤불 속으로 쏟아진다. 시내를 따라 채 몇 리도 가지 않아서 곧 산으로 막혔던 시야가 탁 트이면서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좌우로 깍아지른 듯한 봉우리들이 마치 봉황과 산새가 날아오르는 듯 치솟아 있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동쪽 등성이에는 소나무와 회나무들이 울창하여 하늘을 가리었다. 걸어서 시내를 따라가다 동쪽으로 건너 늙은 당산나무를 지나 정사암에 이르렀다. 암자는 겨우 네 칸이고 깍아지른 듯한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앞쪽으로는 맑은 물이 내려다 보이고 세 봉우리가 우뚝 마주 서 있다. 폭포가 푸른 절벽에서 쏟아지는데 마치 흰 무지개가 물을 마시러 시내로 온 것 같았다.”

또한 선대로부터 받은 우반동 토지를 농장으로 일구었던 반계의 조부 유성민이 후일 우반동 김씨의 시조인 김홍원(金弘遠)에게 준 매매문서에 우반동의 경치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 글을 반계가 썼다고 전해진다.

“대저 이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앞은 탁 트여있고 조수(潮水)가 흘러들어 포(浦)를 이룬다. (...) 기암괴석이 좌우로 늘어서 있는데 마치 두 손을 공손히 마주잡고 있거나 혹은 고개를 숙여 절하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혹은 나오고 혹은 물러나 그 모습이 변화무쌍하다. 아침의 구름과 저녁의 노을이 자태를 드러내면 진실로 선인(仙人)만이 살 곳이요 속객(俗客)이 와서 머물 곳은 아니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장천(長川)이 북에서 흘러나와 남으로 향하니 이로 말미암아 동서가 자연히 나뉘는데 이 장천이 또 하나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

논 가에 버려진 반계 유적비. 반절은 땅 속에 묻혀 있다. <부안독립신문 자료사진>

근대화에 망가져 가는 역사적 유산

그런데 개혁사상의 산실이자 신비의 땅인 우반동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내변산으로 들어가기 위해 바디재를 횡으로 가로지르는 도로가 뚫려 멀리서 바라본 옥녀봉, 매봉의 모습이 흉물스럽다. 또한 농사짓기 위한 우동저수지 축조로 아름답던 장천의 맥은 끊어지고 여기저기 잡스런 시설물이 들어서 있는가 하면, 산중턱에 자리잡은 반계서당은 그야말로 처참하다. 반계 선생이 마시던 우물터, 돌아가신 뒤 가매장했던 묘자리가 전혀 보존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고, 요즘엔 농촌체험마을 시설들이 들어서서 옛것에 대한 느낌이 전혀 없다. 한쪽으로 밀려나 있는 듯한 반계 유허비를 보면서 우반동 역사에 대한 죄스런 마음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성 싶다.

<반계수록>. 26권 13책 중 일부.

들여다 본 반계수록 26권 13책

이제 반계 유형원이 쓴 반계수록(磻溪隨錄)에 대해 알아보자.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유형원 그는 왜 농촌생활을 택하여 우반동으로 왔고 그가 개혁하고자 했던 당시 봉건사회와 양반사회에 대한 그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반계수록 전편에 걸쳐 그의 사상과 실천 목록이 있다. 26권 13책으로 구성된 이 책은 권 1~8은 전제(田制), 권 9~12는 교선(敎選), 권 13~14는 임관(任官), 권 15~18은 직관(職官), 권 19~20은 록제(綠制), 권 21~24는 병제(兵制), 권 25~26은 속편(續篇)이다. 속편으로는 의예(儀禮). 풍속(風俗). 도량형도로(度量衡道路). 노예(奴隸). 양노(養老)에 관하여 언급했다. 각 주제별로 절반은 중국, 한국의 사례를 모아서 반계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고설(攷說)로 실제로는 13권이다.

말미에 보유(補遺)를 붙였는데 군현제(郡縣制)에 대한 내용이고 그밖에 이미, 오광운 등의 서문, 발문 그리고 반계 자신의 간단한 발문이 붙어 있다.

1652년 효종 3년에 쓰기 시작, 1670년 헌종 11년에 마친 19년 간의 걸친 대 역작 반계수록은 반계 사후 100년이 지난 뒤에야 빛을 보게된다. 1770년(영조 46년)에 양득중(梁得中), 홍계희(洪啓禧) 등의 추천으로 왕명에 의해 경상감영 관철사 이미가 목판본 26권 13책을 간행하였다.

김경민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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