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단순한 다툼이나 충돌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일도 살생에 못지않지만 생명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은 지극히 동물적인(반인류적인) 차원의 행위로 용납될 수 없다. 신의 섭리를 운운하지 않아도 약육강식의 원리에 따른 살생은 인간 이외의 동물에게나 허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스스로 인류임을 포기하는 무자비한 살육의 전쟁으로 역사를 채워왔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효율적, 효과적으로 인간을 죽일까’ 고민한 끝에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어 하루 아침에 수천, 수만의 ‘인간’을 없애버리기도 했다.
간혹 (어이없게도) 사람들이 멋있다고 여기는 군 탱크와 비행기, 이 모두 ‘살인’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란 점을 생각하면 인류의 본질에 심각한 회의가 들기도 한다.

1백여년 전 국가와 민족 단위의 약육강식은 제국주의라는 이름으로 끔찍한 세계 대전을 낳았고 역사상 처음 나타난 이념의 대립과 맞물리며 극단적인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 세계사의 한 귀퉁이에서 1950년 6·25-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각자 옳다고 생각한 바(이념)에 따른 너무나도 ‘이성적인’인 행위는 결국 이성을 잃어버린 지경까지 치달았고 남은 것은 무고한 희생과 철천지한이었다.

해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이면 각종 애국애족과 반공(이제는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문구가 가득한 플래카드가 각 기관과 학교 등에 나부끼고 여기저기서 호국, 충열, 보훈, 순국선열 등의 표현을 이용한 문화, 예능 행사를 벌인다.

부안도 예외가 아니다. 시대의 변화로 ‘때려잡자 공산당’ 식의 극우적인 색채는 많이 줄었지만 한번 굳어진 의식 체계와 관성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 듯하다.

지난 25일 부안초등학교 강당에서 6·25 기념행사가 열렸다. 6·25 기념행사가 어차피 관변성에 군사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으리란 점을 이해해도 1970~80년대 순진한 초등학생들까지 공설운동장에 모아놓고 살벌한 반공궐기대회를 하던 때의 분위기와는 달라져야 한다.

6·25를 되돌아보는 자리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인류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스스로 반성하고 그 희생자를 위로하며 상처를 치유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변모해야 한다.

이념의 종식이 쉽지 않다면, 고집스럽고 맹목적인 배타와 공격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그는 왜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정녕 무엇이 인류에서 옳은 가치인지를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과정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를 잃어버리지 않고 축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전쟁을 체험했고 기억하는 분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다.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

단순히 학술적인 차원에서 지역 전쟁사를 발굴하고 복원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보다 반듯하게 미래로 옮기기 위해선 아픈 과거지만 ‘역사’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바로 아픈 전쟁 경험으로 인생을 힘들게 살아온 모든 분들의 영혼이 평안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