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혼돈 속에 빠져 들었다. 출범한지 백일이 갓 지난 이명박 정부의 독선적인 국정 운영이 대한민국 천지를 출렁이게 만들었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벌어지는 촛불집회를 보고 있노라니 80년대의 운동권 노래가 흘러나오는가 하면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서울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 같다.

서울만이 아니다. 부산, 대구, 광주, 인천, 대전, 전주 아니 우리 부안에도 촛불이 켜지고 함성이 울려퍼지고 있다. 역사의 시계가 5년 전, 아니 20년 전으로 되돌아 간 듯하다.

‘주권재민’을 부르짖는 국민들의 의식은 엄청나게 변했는데, 그것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대통령의 무지와 오만함으로 인하여 이 정부는 엄청난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정부는 스스로 자초한 이 불행한 사태 앞에서 그저 전전긍긍 위기만 모면하려 하고 있다.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 이 함성이 비단 광우병 소고기 문제에 대한 것 뿐이겠는가. 자고나면 치솟는 기름값, 생필품값에, 소득은 줄어 하루하루 생활이 팍팍해져 가는 서민들의 가계부는 적자 투성인데도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하는 이명박 정부, 그리고 결국 반정부 투쟁으로 커지고 만 쇠고기 문제, 그러나 해결에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제갈공명의 주머니가 몇 개 있다 해도 이 난국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 듯하다.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국민이 원하는 쇠고기 재협상 밖에 없을 것이다.

맹자 첫 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다. 왕이 말했다. “노인께서 천리를 멀게 여기지 아니하고 오셨으니,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기를 “왕께서는 하필 이롭게 한다 이르십니까? 오직 인의가 있을 따름입니다.”

그렇다. ‘이익’을 말하는 지도자는 이익을 쫓다 망할 것이다. 국민들은 물질적 이익보다는 사람의 가치를 세우는 지도자를 원한다.

저 암울했던 일제식민지 시대 우리 부안이 낳은 걸출한 시인 석정은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리고 더 환하게 촛불을 켜야 할 때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타의에 의해서 촛불을 켜고 끄는 피동적인 사회가 아니다. 국민은 누구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는 ‘종업원’이 아니다. 자발적이고 역동적인 사회가 됐다.

이 사회가 이렇게 변했는데도 국민을 ‘지배’하려는 정치집단들 때문에 이런 혼란스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는가.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는 공권력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와 시민들의 한판 전쟁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장군, 어찌해야 이 나라를 혼란 속에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장군의 현묘한 방책으로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만 있다면 무심하게 그 자리에 서 있지만 말고 성큼 긴 칼 차고 내려 오시오. 긴 칼 들고 이렇게 소통 한번 치시오. “네 이 노옴들, 이 땅에 주인은 백성이거늘 촛불 밝혀 백성 권리 찾자는 것이 무슨 죄라고 그리 방패로 찍어대고 콩밥 멕인단 말이냐. 어서 썩 주권재민하렸다.”

밤낮으로 소고기 재협상, 대운하 반대, 공기업 민영화 반대, 반대, 반대….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려는 정책들 모두를 국민들은 반대하고 있다. 이유가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인가.

부안도 밤이면 촛불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밝기가 생각만큼 강하지는 못한 듯해 아쉽다. 우리도 이 나라 대한민국 국민이다. 남의 불에 개잡는 방관자가 되기보다는 현실에 참여해 촛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며 사회 모든 문제를 내 안에 품고서 나로부터 출발하자. 자율성이 곧 부안의 큰 함성으로 다가 올 것이다. 촛불을 드는 것은 결코 시류에 편승하는 기회주의가 아니라 진정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민의 권리를 찾는 ‘주권재민’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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