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와 유인물에서 만장과 견학 등 다양막대한 비용 투입하고 언론까지 동원한 한수원 맥 못춰

부안의 반핵 투쟁에서 여론전의 중요성은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거대 기획사를 동원하며 퍼부은 157억원의 막대한 홍보비용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이들 핵폐기장 유치 세력이 사용한 세련된 편집과 그럴싸한 구성의 원자력 홍보 다큐멘타리도, 지역 신문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도 소용이 없었다.
찬핵 세력들과는 달리 부안의 반핵 매체들은 친근한 생활 전통에서 출발했다. 만장(輓章)이 대표적이다. 농어촌 사회의 장례식에 사용된 만장은 핵폐기장 유치 신청 직후 지역의 비상한 분위기를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읍내 교류와 소통의 중심지인 터미널 주변과 번영로 등지의 전봇대에 걸린 만장의 시각적 효과는 만만치 않았다. 만장에 아로 새겨진 ‘부안 오적(五賊)’-김종규,김형인,강현욱,윤진식,김두관-은 주민들에게‘핵과 죽임’을 떠올리게 했다.
전통 매체의 또 다른 활용은 사회운동과 관계가 있다. 약자들의 항의와 주장을 위한 대자보와 유인물의 사용은 부안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협과 아담 사거리 등지에 부착된 이들 두 매체는 급박한 투쟁 소식을 신속히 전달했고 그 내용에 따라 주민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그 정도로 많은 이목을 집중시킨 대자보와 유인물은 인터넷 시대에 다소 의외의 매체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내 2만6천여 세대수의 24%에 불과한 6천300여 회선의 초고속 인터넷망이 감당치 못한 비상 소통의 목마름을 전통적인 인쇄 매체들이 채워줬다는 평이다. 또한 인구의 35%(2만4천여명)가 50대에서 70대에 걸쳐 있고 이들이 종이 매체에 보다 익숙하다는 사실은 대자보와 유인물의 필요성을 입증한다.
비디오 또한 시청각 매체로써 반핵 여론 형성에 한 몫을 담당했다. 영광 반핵대책위에서 제공한 영상물을 통해 주민들은 인근 지역의 반핵투쟁과, 인도와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핵 재앙의 위험성을 눈과 귀로 확인했다. 작년 7월 군청 앞 천막농성에서 시작된 비디오 시청은 집중력이 떨어지는 약점도 있었으나 읍면별 마을회관 상영에서는 커다란 효과를 봤다는 평이다.
하지만 여론전의 결정타는 영광 견학이었다는 게 주민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주민들은 눈 앞에 펼쳐진 공동화된 성산리 마을에서 핵폐기장이 들어설 부안의 미래를 보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 부안군, 한수원의 핵 안전성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대한 홍보는 여지 없이 거짓과 사기로 받아들여졌다. 작년 8월~9월 사이 견학에 참여한 주민수만도 8천여명에 달했다. 대책위 김효중 교육국장은 영광 견학에 대해 “사실 처음에는 큰 효과를 기대하지 않았다”며 “한 지역 사회가 핵 관련 시설이 들어왔을 때 농어업을 포함해 상업까지 경제 전체가 붕괴될 것이라는 생각이 확산된 계기였다”고 풀이했다. 영광 견학은 ‘핵폐기장 유치=지역 경제 발전’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찬핵 개발주의를 철저히 논박했다.
그 외 2·14 주민투표 때 제작된 매체로는 리본, 명함형 선전물, 스티커, 꽃등 등이 있다.
거금을 동원한‘핵 마피아’의 여론 매체들마저 아마츄어 냄새가 물신 풍기는 반핵 부안의 매체들에 굴복당할 것이라곤 미처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서복원기자 bwsuh@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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