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갯벌을 보고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2년 전 부안에 살기 시작하며 물이 쫙 빠진 넓은 갯벌을 보는 것 자체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딛는 기분이었다. 술한잔 마시고 다시 바닷가로 나가면 어느새 물이 꽉 차 감춰진 갯벌을 보노라면, 과학적인 인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압도되곤 했다. 그러다가 이웃 누구에게 갯벌에 나갔다가 돌아올 시간을 놓쳐 “겁나게 빠른” 밀물에 휩쓸려 죽을 뻔한 이야기를 듣고선, ‘역시 자연은 겁나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수많은 인간들은 겁을 상실했다.

최영진이란 사진가가 있다. 6월 2일부터 9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서쪽바다 새만금’이란 사진전을 연다. 우연히 이 사진전에 전시되는 작품들을 대형 책자로 인쇄한 사진집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150여장의 사진을 넘기다보면, 이것은 공간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이 공간의 변화가 보이는 시간에 대한 기록이기도 했다. 새만금 방조제의 끝막이 공사 뒤 새만금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150여장의 사진을 넘기는 한시간 가량의 시간동안 서서히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의 경이로움, 인간의 안타까움, 생명체들의 고통들이 끝내 죽음으로 결말짓는 수년간의 과정을 한시간 동안 느낀다면 시간을 대단히 압축하는 것이다.

나는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시간을 압축시키는 또다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영진 씨 처럼 긴 시간을 압축하는 것은 아니지만, 겁나게 빠른 밀물과 썰물을 말 그대로 표현해보려는 것이다. 물이 들오고 나가는 장면을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촬영해서 그것을 빨리 돌리는 영상이다. 더욱 극적으로 겁나는 영상을 위해 물이 빠지면서 섬으로 길이 드러나는 곳을 선택했다.

그래서 며칠 전 사리 때, 위도 치도리에서 큰딴치도와 작은딴치도를 한 화면에 담아 사진기의 셔터를 계속눌렀다. 하기 전에는 이 작업이 대단히 지루하고 고된 작업이 될 것이라 예상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시간이 지나며 고된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갯벌과 하늘의 모습 때문에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정된 화면으로 그 변화의 세밀한 부분들을 다 기록할 수 없는 조건이 안타까웠다.

산에 걸린 구름과 떠오르는 태양과 바지락 캐러 가는 주민들의 모습이 화면 바깥에 있었고, 드러난 갯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들과 수많은 작은 생명체들에게 초점을 맞출 수 없었고, 빠르게 활공하는 도요새와 갈매기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물이 빠졌다가 들어오는 7시간 동안 한자리에 꼼짝 않고 바라본 것들은 정말 경이로웠다.

수만년 동안 만들어지고, 수많은 생명체와 인간들이 기대고 살아온 갯벌이 몇 년만에 파괴되었다. 시간을 압축해서 인지하는 인간의 힘은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닌 물리력으로 드러났다. 동시에 자연은 그리 멀지 않은 나라에서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이 대목에서 겁을 상실한 인간들이 겁을 좀 찾았는지가 대단히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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