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사기 전화를 받았다. 서울지방경찰청이라고 밝히는 녹음된 여자 목소리는 꽤나 무미건조하고 고압적이었다. 내용은 내가 어떤 사건 조사에 1차 출두를 하지 않았고, 2차 출두 시기가 언제며, 자세한 내용을 상담하고 싶으면 9번을 누르란 거였다. 9번을 눌러보니 한국말이 어눌한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이보다 얼마 전에는 한국통신을 사칭해 전화 미납요금 70만원을 내라는 사기 전화를 수차례 받은 적 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신용카드 회사를 사칭해 카드 미납금 250만원을 내라는 사기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러니까 이 사기단들은 금융기관, 공공기업, 국가기관을 동원하는 순서로 내게 사기를 치려한 것이다. 세 경우 모두 나는 금융기관, 공공기업, 국가기관에다 확인 전화를 해 보았다.
금융기관에게는 사기당하지 않도록 개인정보를 절대 말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고, 공공기업에게는 심려를 끼쳐 미안하지만 자기들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사과와 변명을 들었고, 국가기관에게는 앞의 두 가지를 다 들었다. 압축정리하면 ‘조심하라’는 얘기다.

방금 서울지방경찰청에서는 이런 류의 사기단이 몇차례 검거되기도 했지만, 이런 사기단이 2006년 말부터 중국과 대만에서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고, 수많은 금융, 공공, 국가 기관을 사칭하고 있는 실정이라서 아직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는 나름의 설명까지 들을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사기단에 당하진 않았지만, 이들의 전화를 받았을 때 아주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들과는 천적관계에 있는, 흔히 관이라 불리는 강력한 곳을 사칭하는 것과 관이 시민들을 대하는 무미건조하고 고압적인 태도까지 제대로 연기하는 것이 그랬다. 거기에다 사기라는 것을 알고 나니 나처럼 가진 것도 없는 사람들까지 사기 대상으로 삼는 그들의 무차별적 범죄 방식에 등골이 오싹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섬뜩한 것은 관과 사기단에게서 받는 느낌에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개인 정보를 보호한다는 구실로 온갖 첨단 보안 기술을 이용해 주민증과 갖가지 개인인증 카드 등을 전산화시켜 개인 정보를 완전 독점하려는 여러가지 시도들을 해왔다. 개인 정보들을 독점해서 주민들을 통제하려는 것 자체도 비인권적이지만, 덤으로 첨단 사기꾼들을 위한 사기의 천국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조금 달라 보이지만 한반도대운하같은 빤히 보이는 것부터 선거 때 나오는 정치인들의 대부분의 공약들도 결과적으로 다르지 않는 사기 아닌가? 요즘 한국보다 기술이 떨어진 곳에서 온 사기꾼들이 활개칠 때, 관에서는 조심하란 말 말고는 할 게 없다. 더 첨단 사기꾼들이 활개치게 될 때, 시민들은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그나저나 지금 벚꽃이 한창 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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