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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리고 쉼표] ‘갠미’가 나려면 역시 ‘미원’?
  • 허성호(부안생태문화활력소 사무국장) 
  • 승인 2008.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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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에 있었던 일이다. 겨울이 다가오며 혼자사는 나로서는 김장김치에 대한 걱정이 만만치 않다. 다행이도 이웃 사는 이성림 씨네 김장하는 날 힘을 보태고 원하는 만큼 김장 김치를 얻기로 했었다. 사실 일한 거라곤 없는데도 원하는 만큼 김장 김치를 얻었다.

그런데 김장김치만 얻은 게 아니라, 김장김치보다 더 소중한 마음을 함께 얻어왔다. 그날 이성림씨의 음식을 처음 먹는 건 아니었지만 온전하게 이성림씨의 음식 솜씨를 느낄 수 있는 첫 기회였다.

내 느낌에 그 음식은 그다지 화려하진 않지만 맛이 아주 깊다. 돼지 수육, 딤팽이 젓과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전어 새끼같은 생선을 우거지에 버무려 지진 찌개 국물의 깊은 맛을 느끼던 중에 생각지도 못하던 다른 맛을 느꼈다.

아니, 그건 맛이 아니라 맛의 비결에 대한 애환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그 애환의 이야기를 들게 된 것이다.

“넣을 거 다 넣고 엄니에게 배운 거 대로 한다고 다 했는디 간을 보면, 갠미가 쩨끄마니 모자란 감이 들 때가 있재. 요럴 때 미원을 톡 뿌려주면 그 갠미가 딱 살아나니께로, 우리 주부들이 타박받을 거인지 미원 넣을 거인지 고민이 된다께로….” 이성림씨의 이야기를 제대로 옮기려 하지만 대충 옮긴 것 같다. 타지방 출신이 듣기엔 대단히 절묘한 뉘앙스라는 것은 충분히 느꼈다.

하여간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 집에는 미원이 없더라. 그런데 갠미란 단어가 뭐였더라? 감미, 간미? 뭐가 됐든 무슨 뜻인지는 짐작이 돼고, 그 때 먹던 음식들이 그 짐작을 충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미원에 대한 이성림씨의 이야기는 아주 짧으면서도, 언어의 사회성, 심미세계의 깊이, 타협과 근본주의의 갈등, 가부장문화 속에서 여성의 지위와 현실 등의 여러가지 복잡한 고민거리를 짧은 문장 속에 깊이 새겨 주었다. 그녀의 음식처럼.

그리고 시간이 얼마간 지나서 부안 읍내의 어느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평소에 음식 맛에 대해 함께 품평하기 좋아하는 분과 어디서 밥을 먹을까 심각한 고민을 하다가 겉보기엔 작고 허름하지만 친구 머시기 엄마가 해준 밥같은 맛을 내는 정겨운 어느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반찬이 깔리고 개걸스럽게 밥을 먹으며 함께한 분이, 한국에 곧 유전자 조작된 옥수수가 수입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유전자 조작에 대한 이야기는 각설하고, 그분이 말하길, “이거 처럼 미원 안 들어간 거 많이 먹어 두세요”란 이야기를 했다. 난 ‘미원’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내 이웃 이성림씨의 이야기가 딱 떠올랐는가 하면, 한편으로 내 입맛은 약간의 미원 맛을 느끼기도 했다.

이말을 나만 들은 게 아니라 그 식당 주인 아주머니도 들었나 보다. “미원 안 넣으면 맛이 나남요? 뭐든지 미원이 약간 들어가야 맛이 제대로 난다니께요” 그러신다. 나는 속으로 한번 더 큰 소리로 웃었다. “역시 미원!”


허성호(부안생태문화활력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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