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아직도 바람 끝은 차지만 봄기운이 완연하다. 얼어붙었던 대지에서 만물이 소생하고 굳어있던 길가에도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난다. 차가운 봄바람이 겨우내 잠자고 있던 우리의 몸을 일깨우고 기지개를 켜게 한다. 봄은 계절의 시작, 밭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리듯이, 우리는 알찬 수확을 기대하면서 새로운 파종을 한다.

그래서 봄은 희망의 계절이고 인생의 출발선이다. 기회를 놓치면 수확을 기대할 수 없기에,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부지런히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 땀흘릴 만반의 준비를 하는 때가 또한 봄이 아닌가 싶다.

추운 겨울 얼음을 깨고 오는 계절의 봄은 철따라 우리 곁을 찾아오지만,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는 역사의 봄은 그냥 오는 게 아니다.

봄을 간절히 염원하는 창조적 소수자들의 기다림과 실천을 통해 오는 것이다.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 밝은 봄을 맞이할 수 있다.

예수는 십자가형틀에 매달리고 고난을 겪었다. 그리고 부활했다. 고난이 없는 부활이 없고 부활이 없는 고난 또한 없다.

겨울을 지나지 않으면 봄을 맞이할 수 없듯이, 고난을 당해보지 않으면 진정한 부활을 경험할 수가 없다.

영국의 식민지 치하에서 독립투쟁을 하다가 여섯 차례나 투옥되었던 네루는 약소민족도 세계사에서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된다고 확신하면서 열세살 된 딸에게 세계사 편지를 썼다.

서구중심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균형잡힌 역사관과 세계관을 가질 것을 바라면서. 1931년부터 3년동안 196통의 옥중 편지를 써보낸 것이 유명한 네루의 ‘세계사편력’이다.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18년 유배생활 중에 아들들에게 가르치는 훈육의 편지들과 500여권의 방대한 실학관계 저작을 완성했다. 다산은 대표작 목민심서에서 “화합하여 잘 지내는 것(和順)은 집안을 질서있게 하는 일(齊家)의 근본이요, 부지런하고 검소한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治家) 근본이요, 독서는 집안을 일으키는(起家) 근본이요, 원리를 따르는 것은 집안을 보호하는(保家) 근본이라”<가정생활의 네가지 근본(居家四本)>고 했다.

또 “과거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학문이야말로 이단(異端) 중에서도 가장 악독한 것이다. (...)그 해독은 홍수(洪水)나 맹수(猛獸)의 피해에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과거공부에만 온갖 정력을 기울이고 도의(道義)는 가르치지 않으니 신의사회가 무너져버렸다”(科擧爲主 而道義不講 朋友之信 壞矣: 示兩兒)라고 지적하며 신의가 무너져버린 세상에 대한 문제점을 고발하고 있다.

감옥이나 유배지에서 역사의 봄을 확신하며 후세에게 바른 정신을 일러주신 위인들의 일화다. 유대인에게 지혜서 ‘탈무드’가 있다면, 인도에는 네루의 역사서 ‘세계사편력(Glimpses of World History)’ 이 있고, 우리에겐 다산의 ‘목민심서’가 있다. 봄에 역사의 봄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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