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은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신문과 방송들은 교사와 학생들의 반응에서부터 영어 사교육 시장의 변화 전망에 이르는 다양한 기사들을 쏟아냈고, 초·중생 아이를 둔 부모들은 ‘이제 우리 애는 어쩌면 좋은가’ 걱정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영어공교육을 강화함으로써 영어 사교육의 부담을 덜어주고 소외계층이 영어 때문에 사회적 불이익을 받는 일을 없애거나 줄이겠다는 것.

일단 영어문제를 사회적 특권 혹은 권력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은 맞고, 소외계층을 배려하겠다는 것도 건전한 정책방향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문제는 지금의 방침으로는 영어 사교육의 부담이 줄기는커녕 늘어날 것이고, 소외계층의 사회적 불이익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교육은 정치가 아니다. 교육은 미래의 세대를 길러내는 일이고, 적어도 2~30년 후를 내다보는 일이다. ‘일개’ 대통령의 ‘치적’을 위해서 좌지우지될 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인수위와 당선자는 교육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고, 조용히 영어 교육의 개선을 위해 애쓰는 현장의 교사들과 연구자들을 지원하고, 전반적인 공교육 학습 여건을 개선하는 데나 힘쓰는 게 맞다고 본다.

굳이 영어 교육과 관련된 ‘정치’를 하려거든 주제넘게 온 국민의 영어회화 실력을 걱정할 게 아니라, 무엇보다도 영어가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닌 ‘구별’과 ‘차별’의 도구로 사용되는 사례들을 줄이는 데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첫째, 영어교육을 정치구호로 삼지 말라. 영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조용히 투자해라. 영어선생 더 쓰고, 외국인 수입해라. 그래서 수업 당 학생수를 줄이고 영어에 대한 노출을 늘려라. 그러나 3~4년 안에 무슨 효과를 낼 생각은 하지 마라.

둘째,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라 외국어로 가르쳐야 한다. 그렇다면 무조건 말이 중요하다고 하는 식의 엉터리 영어교육이론은 집어치워라. 외국어는 글로 배워야 하고, 글을 기본으로 말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고급한 외국어가 배워진다. 영어를 모국어로 배우고 싶은 사람은 그냥 미국에 가서 살면 된다.

셋째, 우리나라에서 영어 잘하면 출세한다는 말은 사실 여전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 자체로 국가경쟁력은 아니다. 영어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영어교육을 전국민에게 전면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쓸데없는 영어 과수요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영어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영어교육을 강화하고,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분야에서는 영어에 대한 요구, 즉 영어시험을 없애라.

넷째, 영어실력은 한국어실력과 같이 간다. 따라서 모국어인 한국어와 제1외국어인 영어의 위상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한국인에게 효과적인 영어학습법은 따로 있다. 영어교육전문가들은 몰입교육 운운하기 전에 그것부터 연구해서 개발해내야 한다.

다섯째, 원어민에 의한 영어교육도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맞는 영어교육은 원어민과 한국인 영어선생들이 협력해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영어는 무조건 원어민한테 배워야 한다는 것은 식민지 근성의 잔재이거나 미국, 영국 사람들 구경하기 힘들었던 시절에나 통하던 얘기다.

새 정부의 영어 정책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적 목표를 수행’하는 공교육의 기본 정신에 따라 수립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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