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친한 친구가 몇 명이나 되는지 무심코 셈했다가 등골이 오싹해진 적이 있다. 어느 것이 다행이고 어느 것이 불행인지 모르지만, 숫자는 까먹었고, 자릿수는 하나였다.

친구가 적은 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내가 참 좋아했던 한 친구와 최근에 멀어진 것은 내가 얄미운 짓만 골라서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집에서 대하를 훔쳐나왔다는 소식에 세명의 술친구들이 쉬쉬하며 모였다. 우리끼리만 대하를 먹으려니 계획에 없던 밤소풍을 가게 됐고, 버너와 후라이팬, 신문지, 소금 등 적지 않은 짐들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스레 들고 나갔다.

편의점에서 술을 사고, 동네 놀이터 가로등 아래 자리를 잡아 신문지를 깔고, 대하소금구이를 위한 세팅을 친구들이 했고, 나는 감독을 했다. 대하 맛이 좋아 술도 금새 바닥이 났고, 친구가 편의점에 한번 더 다녀왔고, 그것도 금새 바닥이 났다. 내 마음 속의 양심이 이번엔 내가 가야 한다고 말하는데도, “나 촌에서 살다보니 여기 지리를 다 까먹었어!”란 말을 했던 것 같다.

난 장난이었지만 친구에게는 정도를 넘어선 파렴치한이 되고 말았다. 엄청난 욕을 먹고 술사온 다음엔 무릎꿇고 그 친구로부터 어느 파렴치한의 역사를 들었다. 나는 진심으로 내 잘못을 뉘우치고 끝내 용서를 받아내긴 했지만, 그 이후 어느 술자리에서도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지금은 다시 친구들의 수를 한 손으로는 못 셀 만큼 많아졌다. 며칠 전에 새로 생긴 한 친구가 꿈에도 그리던 독립을 했다.

그날 다른 친구들이 이사를 도와주고 있었고, 나는 없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해가 저물고선 이사 못 도와줘서 미안하단 전화를 하고 친구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대하먹다가 잃어버린 친구 생각이 떠올랐다. 늦게나마 뭔가 도움거리를 분주하게 찾았지만 못 하나 박는 것이 전부였다.

혼자 불안한 마음에 저녁을 먹으며 설겆이는 꼭 내가 하리라 마음먹고 그릇을 챙기는데 나를 잘 아는 친구가 “아니, 왠일이래? 설겆이 할라고?” 묻는다. 가슴이 철렁했다. “더이상 친구를 잃을 순 없어!” 대하먹다 친구 잃어버린 슬픈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웃음바다가 됐다. 그날은 일단 안전.

설 연휴 전날에 집들이하는데 올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 그날 올라갔다가는 귀성행렬 때문에 돌아오는 게 걱정이라 한참을 망설인 끝에 대단한 결심을 하고 전화를 걸었다. “쭈꾸미든 뭐든 맛난 거 들고 갈게요. 주방은 내게 맡겨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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