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는 이제 아동소설로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소인국(小人國)편과 대인국(大人國)편을 축약 소개하였기 때문에 아동소설로 알려졌지만 18세기 영국사회의 허례와 교만, 부정과 부패등을 풍자하고 비판한 성인소설에 가깝다.

덩치가 큰 걸리버를 정치적이거나 무력의 위협용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소인국은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가 말하고자 했던 영국사회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걸리버가 여행했던 마인국(馬人國)은 사람의 형상을 한 야후를 가축으로 키우는 말 ‘푸임무’가 살고 있는 나라로 작가가 살고 싶은 이상의 나라였다.

소인국에서 걸리버를 생각하는 것은 정치의 계절에 ‘유권자’의 처지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민의’를 존중하고 ‘민심’에 이반하지 않는 정치를 한다고 강변한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서는 고개를 숙이고 겸허하고 민의를 대변하는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약속하고 또 약속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당선증이 교부되면 딴 모습으로 돌변한다. 철저히 계산되고 계획된 약속인 것이다. 유권자는 매번 돌아오는 선거에서 이러한 약속에 속고 속아 진저리 치지만 여전히 투표소로 향한다. 정치의 책임은 유권자의 몫으로 남아버린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소인국의 사람들은 처음 본 걸리버를 무서운 대상으로 여겼지만 현명한 군주는 적국에 위협용으로 활용해 나가는 구상을 계획대로 수행한다. 정치의 계절, 소인국에 처음 도착한 걸리버는 오늘의 유권자다. 적당히 이용하여 용도폐기하는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유권자에 불과한 것이다.

정책이슈와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재미가 없었던 이른바 3무(3無)의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중앙부처를 비롯해 정치권과 시장(市場)은 뒤숭숭하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당선과 범여권의 패배에 대한 결과 예측은 국민들의 여러가지 사인(sign)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다만 이를 절실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구태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았으며 진정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국민들은 거짓과 부패, 부정을 애써 외면하며 새로운 정권을 만들어 냈다.

국민들의 사인을 외면한 정치인들은 다시 또 잰걸음을 하고 있다. 60여일 앞둔 총선에서 또다시 기득권과 권력갖기를 위한 장정에 들어갔다. 총선을 겨냥한 예비후보들은 새로운 정치, 지역발전 적합자임을 알리는 거대한 홍보물로 시민들에게 선을 보이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시민들에게 이들의 대형홍보물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우리 정치현실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시민들에게는 너무나 위압적인 거대한 괴물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분명 선거시기에 유권자는 소인국 사람이 처음 보는 걸리버이다. 정치인에게 너무도 크고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편 공천이 바로 당선이었던 호남에서는 물갈이에 맞서 지역발전 공로자로서 자임하는 현역의원들의 항변도 거세다. 예비후보들만 모아도 11개 선거구에 100여명이 가세하고 있으니 전북의 인물이 적지 않은 듯 하다.

하지만 이렇게 잘난 인물들이 유권자인 걸리버에게 너무도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는 이유를 정치인들은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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