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철(변산면·44)

“이렇게 좋을 때가 어디 있것어? 근데 백지화 선언 이제 해야지. 그것을 안 하니까 승리한 것도 안같고 그러네. 승리는 했는데 정부에서 확실한 백지화 발표를 안 했잖아, 왜 그걸 않는가 몰르것다. 미적미적 미루고.” 김씨가 승리대회 의미에 대해 말했다. 그는 또 “부안 군민이 똘똘 뭉쳐서 이겼다고 봐야지. 특히 아줌마들이 적극적으로 싸워왔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있지 않았나, 남자보다 여자들이 훨씬 힘을 많이 실어줬지”라며 여성들의 공로를 치하했다.
특히 그는 삼보일배하러 서울 갔을 때 전경들이 기자회견을 막아서 몸싸움을 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 김군수 퇴진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순기 (보안면·66)

“얼마나 좋은지 눈물 나올 정도지. 우리가 투쟁했으니까 이렇게 됐지. 투쟁안했으면 이렇게 안됐지” 부안읍사무소 앞에서 줄당기기 시합을 관람하던 백순기 할머니는가 감해를 밝혔다. “차타고 오면서 멀미할 때, 눈보라칠때 가장 힘들었지”라며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우리 부안군에, 살기좋은 부안군에 그런 것이(핵폐기장이) 들어오면 안되겠다 싶어. 나는 이미 늙었으니까 죽으면 끝나지만 앞으로 우리 자손만대에 이런 것이 들어오며 안되것다 싶어서 했지.”라며 반핵운동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백순기 할머니는 반핵싸움을 통해 “한마음이 됐기 때문에 왜놈도 물리치고 독립할 수 있었듯이, 우리가 한 마음이 되었다는 것, 나쁜 일에는 모든 군민이 나선다는 것이 가장 많이 달라진 일”이라고 말했다.


박영만(계화면·42)
“그동안 엄청 힘들고 욕봤지. 인자 정부에서 밀어붙이기식으로 했지만 군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잘못된 점 바로 고쳐야 한다는 그런 믿음 하나, 그런 것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승리가 있지 않았나 합니다.”“서해안 고속도로 점거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때 우리가 자체적으로 고속도로 점거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어요.” 지난 부안항쟁에서 기억에 남는 일로 고속도로 점거를 꼽았다. 핵폐기장 싸움이 끝난 후 그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런 힘을 새만금 공사중지로 몰아붙였으면 쓰것어요”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핵폐기장 싸움도 그랬듯이 새만금 사업도 언론에서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보도하고 있어서 판단할 겨를이 없었다”면서 “ 군민들이 모든 면을 알고 난 다음에 판단을 하면 새만금 사업에도 많은 사람들의 힘이 모아질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최진상 (백산면·56)

“1년5개월 싸운 보람이 있지. 백지화라 보는데 이놈의 정부에서 백지화 소릴 해야 완전히 승리가 되지.” 승리에 대한 소감을 밝힌 최씨는 백산면은 어떻게 싸웠냐는 질문에 “야튼 죽것다고 싸웠다”고 말했다. “전경한테 쳐맞았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죠. 맞아가지고 며칠간 둔너(누워) 있었고 그랬죠. 입원할 정도로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방맹이로 몇 번씩 맞았어요.” 당시를 회고하며 분노했다. 백산면대책위에서 직접 빚은 수제비를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연신 권하면서 “군민들이 똘똘 뭉쳐서 바람막이가 되었기 때문에 승리했지요”라며 껄껄 웃어보였다. 특히 이후 투쟁에 대해 “김종규 퇴진운동 끝까지 해야죠”라고 밝혔다.
이향미 기자 isonghm@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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