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1시께 반핵풍물패의 흥겨운 길놀이로 축제는 시작됐다. 200여명의 주민들은 너나없이 암줄과 숫줄을 나란히 어깨에 짊어졌다. 40여 미터 되는 두 개의 노란색 행렬이 반핵투쟁의 성지 부안성당 광장에서 출발하여 군청 앞 광장, 상설시장, 버스터미널 앞을 차례로 지나갔다. 상점의 군민들은 문을 열고 손을 흔들며 박수를 쳤다.
그 시간 읍사무소 광장엔 벌써 무대가 세워졌고 ‘생명·평화·주민자치’를 상징하는 거대한 걸개그림이 걸렸다. 길을 따라 일렬로 각 면대책위별로 간이 천막이 설치되고 모두들 음식 장만에 분주했다. 꽹과리 소리가 높아지고 노란색 행렬이 광장에 도착했다.
아낙네의 김치전 붙이는 손놀림이 빨라졌다. “술만 묵지 말고 궁물도 드시시오~잉.” 건하게 한 잔 걸친 사람들의 말소리도 커지고 저마다 사연들을 기억해냈다. “지난 시안(겨울)에는 겁나게 추웠는디. 징했제.” 오댕국물을 마시며 수줍음을 타는 여고생의 애띤 목소리가 이어졌다. “핵폐기장 부안에 오지 말라고 한강에서 기도했는데...” 콩가루를 듬뿍바르고 인절미를 써는 아줌마의 인심도 훈훈했다. “1분도 안가서 40kg 찹쌀떡이 다 나강께, 내 옆에 꼭 붙어 있으시요잉.”
“역시 부안 여자들이여”, “남자들은 힘 좀 써보시오.” 부안 아줌마 아저씨들의 성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줄다리기는 부안아줌마들의 승리로 끝났고, 웅장했던 북 공연에 꼬마아이들은 귀를 막았다. ‘부안군민 승리의 날’은 본행사가 시작되어도 뒤편 광장에선 삼삼오오 모여서 술잔을 돌렸다. 정신없이 김치찌개를 나눠주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손을 멈춘 건 이때였다. “소아주머니가 오늘은 팔 소가 없어 염소를 팔아 40만원을 기금으로 내놓았습니다.” 자신의 생계도 팍팍한 소아주머니의 ‘헌신적 기부’가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의 동심원을 그려갔다.
많은 내빈들의 격려사가 진행되고 무대공연이 이어졌고, 마침내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는 핵폐기장 백지화, 부안군민의 승리를 선언한다”로 시작되는 ‘부안승리선언문’이 낭독됐다.
오후 5시15분, 네 시간 넘게 계속된 축제는 ‘부안군민 만세’를 외치며 끝이 났다. 무대는 내려지고 줄다리기용 줄이 태워진다. 모닥불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서로 어깨를 걸고 빙글빙글 돈다. 끌어안고 얼굴을 부비며 장장 17개월의 드라마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부안군민 승리했다 강강수월래...부안군민 하나되자 강강수월래...이땅의 주인이 누구더냐 강강수월래...부안군민이 주인이다 강강수월래...”
김일호 기자 ilhokim@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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