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수, 반(反)김종규 정서 업고 단일후보로 승리김종규, 공식사죄로 선전, 유권자 설득에는 한계












대선에 대한 관심을 뒤로 밀어낼 정도로 후보간 치열한 경쟁과 막판 뜨거운 관심이 집중된 부안군수 재선거가 결국 통합신당 김호수 후보의 무난한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김호수 후보가 48.7%의 지지율로 40.4%의 김종규 후보를 어렵지 않게 따돌린 이번 선거 결과는 크게 보면 지역의 뿌리깊은 반핵정서와 김종규 후보에 대한 반감에서 일차적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인 계기는 후보단일화를 통한 ‘몰아주기’였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투표일을 일주일 가량 앞두고 오차범위내 접전을 벌이던 두 후보의 경쟁에서, 김호수 후보가 8%까지 격차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10%대의 고정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던 최후보의 사퇴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마찬가지로 찬핵-반핵 구도에 동참하지 않고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는 구조에서 단일화 논의 대상이 아니었던 강수원, 이석기 후보와 후보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중도 이탈한 이강봉 후보가 선거 밖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사실상 김호수, 김종규 후보 둘 만의 선거를 치른 셈이다. 이는 나머지 세 후보의 종합 득표율이 10% 남짓 밖에 안된다는 점으로 확인됐다.

김호수 득표율 48.7%의 빛과 그늘
김종규 눌렀으나 '만들어진' 후보의 벽


김후보의 당선은 자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반핵·반김종규’의 지역 정서와 부안군민회의로 대표되는 시민단체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후보단일화에 합의했던 최규환 후보가 막판 후보 ‘사퇴’ 거부로 민감한 갈등을 빚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김후보는 최규환 후보의 지지표를 흡수했다.

동시에 폭넓은 반핵 진용을 갖춘 부안군민회의의 든든한 지원까지 업은 김후보의 우세는 충분히 예상됐다.

거기에 ‘기호 1번의 효과’, 즉 정동영 대선 후보의 ‘바람’이 기호 1번 김호수 후보에게 반영된 것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찍을 사람이 없다”고 한 유권자 상당수가 김종규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 김호수 후보의 개인 자질과 능력을 ‘묻지 않고’ 투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호 조건과 ‘묻지마 투표’에도 불구하고 김후보의 득표율이 과반을 넘지 못한 것은 근본적으로 김후보의 무게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높은 인지도나 자질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있었다면 더 높은 득표율을 보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규, 경제불황 불안심리 활용해
국책사업 뿌리친 아쉬움 파고들어


반면, 거대한 반핵의 파고에 맞서 지난 5·31선거의 득표율 34.37%를 6%가량 넘어 40%를 얻은 김종규 후보의 선전은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지지 기반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후보가 2002년 3기 군수로 선출될 당시 얻었던 52%의 득표율은 핵폐기장 유치 문제로 크게 위축됐다가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불황에 지친 유권자의 심리도 한몫했을 것이다.

한 예로 경주 핵폐기장 유치가 가져다준 경제적 이익에 대한 미련과 관심이 유권자들 사이에 빠르게 번져가면서 김종규 후보로 마음이 돌아섰던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지난 5·31 선거가 ‘김종규 대 이병학’이었다면 이번 선거는 이병학 대신 김호수가 그 자리에 들어섰다. 5·31선거로 이미 한번 찬·반핵 대결의 연습을 치른 데다 이병학 전군수의 낙마로 불안감까지 가중된 유권자들의 심리는 이번 선거를 더욱 확실한 찬·반핵의 틀로 만들었다.

그런 배경 속에 후보단일화는 김호수 후보만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김종규 후보의 지지표도 결집시켜 득표율울 함께 높인 효과가 있었다.

한편 민주당 이강봉 후보는 이번 선거로 혹독한 교훈을 얻게 됐다. 5% 대의 득표는 토착 기반과 반핵 명분 없이는 지역 정치에 자리잡기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각각 2%대의 저조한 득표율을 얻은 강수원 후보와 이석기 후보도 찬·반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조직을 거느리지 못하면 득표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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