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면 운산리 성천항 포구.
하섬근처인 이곳은 예로부터 멸치의 황금어장이었다.
태풍 나리가 소멸된 지난 17일. 초가을 하늘은 유난히 맑아 보였다. 50여 미터의 방파제 좌우에 출항을 준비중인 꽃게와 멸치잡이용 중소형선박들이 10여척 보인다.

첫 조업장소에서 멸치 그물망을 올리고 있는 대성호 ‘삼인조’.

오후 3시반.

인근 슈퍼에 잠시 들러 취재장비를 정돈하고 개량 안강망 어선인 5.67톤 대성호에 몸을 실었다. 고정망 어선인 대성호는 멸치잡이 어선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멸치잡이가 신통치 않을 때는 꽃게도 잡고 전어도 낚는다.

고정망은 망의 길이가 60미터 이내여야 하고 말뚝을 사용하지 않는다. 망의 끝부분에 주인의 이름이 새겨진 부표를 고정한다고 해서 고정망이라고 부른다.

올해로 28년째 멸치잡이를 하고 있다는 선장 김대용 씨와 김씨의 아들 호수 군, 30년 경력의 이형길 씨가 오늘 조업의 주인공들이다.

갓 잡은 멸치를 끓는 가마솥에 데쳐내고 있다.

멸치는 한해살이다. 봄에 알을 쏟고 여름에 죽는다. 3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 번식을 위해 연안으로 찾아드는 멸치떼는 이곳 운산리 어민의 젖줄이나 다름없다. 조류가 순해지는 조금물때, 반달이 떠오르는 밤을 기다려 고향바다의 20~30m 수심 암초위에 배를 비벼 알을 쏟은 뒤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멸치잡이 어부에게 있어서 6월과 7월은 풍어의 계절이다. 하지만 새만금 방조제가 생기면서 방조제 외측인 이곳 성천항 일대에도 멸치어장이 급감하고 있어 올 여름 조업은 아예 포기했다고 김씨는 말한다.

“지금은 이 삼년전 어획량의 십분지 일이나 될거시여. 그땐 한 이백 박스씩 건져 올렸응게. 근디 지금은 아녀. 방조제 땜에 뻘은 죽어가고 열대어들은 늘어나고 멸치뿐만 아니라 꽃게와 조개구경하기도 갈수록 힘든 상황이제.”

이백 여개의 바구니를 태양건조 시키면 2킬로그램 종이박스 150여개가 만들어진다. 하섬근처에는 품질좋은 지리멸치가 많아 가격은 ‘땡땡’하게 받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란다.

시동을 걸고 멀리 하섬이 보이는 북동쪽으로 2킬로미터쯤 나아가자 삼각형 모양의 어망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성호의 갑판이 갑자기 부산해졌다. 김씨와 이씨가 노랏줄을 이용해 그물을 잡아 당기자 육중한 그물이 물방울을 튀기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짙푸른 바다 속에서 은색 멸치들이 그물코에 꽂혀 파르르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올라온다.

이후 그물 속 멸치들은 숨쉴틈도 없이 배갑판 중앙에 있는 뜨거운 가마솥으로 빨려 들어간다. 섭씨 100도가 넘는 이 가마솥에는 소금 한가마가 들어 있다고 한다. 멸치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삼 사분쯤 지났을까. 김씨가 쪽지(가마솥에 있는 멸치를 들어 올리는 기구)를 이용해 따까리(잡은 멸치를 나눠 보관하는 바구니를 이렇게 부른다)에 담아낸다. 멸치 어획량이 그리 탐탁치 않지만 그래도 아랑곳 않는 모습이다.

“사리때는 그래도 풍성한디 오늘은 조금때라 역시 덜잡히는 구먼. 내일은 좀 나아지겄제.”

오후 5시경 대성호는 뱃머리를 다시 세우고 다음 조업장소로 빠르게 움직였다. 하섬쪽을 바라보니 어림잡아 20여척에 달하는 큼지막한 어선들이 바다 가운데 즐비해 있었다. 김씨는 이 배들이 해경의 단속을 피해가며 불법조업을 하는 유자망 어선으로 외지의 대형선박업체 소속이라고 말했다.

“몇달전부터 야음을 틈타 불법조업을 하더니 이제는 밝은 대낮에도 해먹는구먼. 해경은 불법 조업을 눈감아 주는건지 신고혀도 단속도 안하고, 힘없고 돈없는 영세어민들만 죽이는 거제.”

어민들에 따르면 멸치 산란장을 보호하고 항로를 확보하기 위해 제정한 ‘3마일 이내 연안 조업금지 조항’을 외지에서 온 대형선박들이 보란듯이 위반하며 멸치와 전어, 꽃게 등을 닥치는 대로 남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군산해안경찰서에 신고를 해도 그쪽 선박회사편을 들어주며 신고한 어민을 오히려 의심하며 조사하려든다는 것이다.

조업 도중 배 밑에 걸린 그물망을 풀고 있다.

오후 5시 30분경.

두번째 그물이 갑판위로 출렁거렸다. 세명이 끙끙대며 힘겹게 걷어 올려 풍성한 듯했지만 이번에는 해파리와 물알이 멸치잡이 어부의 마음을 서운하게 한다.

넓적한 버섯모양의 해파리와 물알을 바다로 내보내고 지리멸치를 추스려 뜨거운 가마솥에 다시 쏟아 부었다. 따까리로 8개가 나왔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다. 몇년전만 해도 사리때 하루조업을 하면 200박스 이상 멸치잡이를 했었는데 기름값도 안나온다며 “오늘은 놀러온 셈치자”며 김씨가 너털 웃음을 짓는다.

걷어 올린 그물과 따까리를 정리하자 뱃길 서편으로 노을이 물들기 시작했다. 그물을 싣고 배는 성천항으로 기수를 돌렸다. 만선의 기쁨도 없이 속도를 내며 뱃길을 재촉한다.

선내에서 지친 다리를 포개서 접고 담배를 꺼내 문 어부들은 꽃게잡이 그물망 피해를 하소연한다. 25톤이 넘는 대형 유자망선박들이 침입하여 10폭에서 30폭 크기의 꽃게 고정망을 싹쓸이 해간다는 것이다. 하루에 20폭 그물 10여개가 한꺼번에 사라져 피해액이 4백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지역어민들 대부분이 이런 피해를 보고 있지만 경찰당국은 방관하고 있다며 “나팔불어봤자 우리만 손해보는 것 같다”고 속터져 한다.


오후 6시반.

대성호가 성천항 포구에 도착했다. 어부들의 옷은 멸치살점과 내장 국물로 뒤범벅이다. 포구 선착장에 멸치 바구니를 내려놓은 뒤 다음날 태양건조를 위해 트럭에 옮겨 실어 건조실로 보낸다.

고단한 하루의 조업이 끝난 것일까.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멸치조업을 마친 김씨와 아들 호수 군은 한쪽에서 전어그물을 챙기며“앞으로도 2시간은 더 일해야 하는디 다음에 많이 잡힐때 다시 오라”며 야간출항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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