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올 때 트럭 좀 가져와라.”
“왜?”
“책을 학교에 주고 싶어서….”
“뭐, 진짜?”
“응.”
“언니야, 나 주면 안 될까?”
“싫어.”

시골에 사는 동생이 안쓰러워 모든 것 다 나눠주던 언니가 냉정하게 싫다고 한다.
참으로 섭섭하면서도 아까운 마음이 크다.

언니 집 거실은 마치 소학교의 도서관 같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이 읽어야할 권장도서로 가득하다. 성격이 깔끔한 언니는 마치 책방주인처럼 책을 아낀다. 우리 아이들이 놀러 가서 책을 볼 때마다 깐깐한 사감선생님처럼 군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그 책 전부 기증할거야, 어디 마땅한 곳 생기면….”

그 마땅한 곳을 드디어 정했단다. 작년 언니 아들이 교환학생으로 4개월 정도 다녔던 우리 동네의 작은 초등학교로 정하고 났더니 마음이 급해졌나 보다. 족히 2천 여권이 넘는 책을 옮기기 위해 트럭까지 부탁하는 걸 보니 진심인가 보다. 그런 언니가 얄미우면서도 존경스럽다. 통계청은 ‘한국의 행복을 저해하는 5대 결핍 요소’ 중의 하나로 기부와 봉사의 부족을 꼽았다. 바꾸어 생각하면 기부와 봉사의 행위를 통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 것 아닐까?
내가 잘 알고 있는 한 가족도 봉사를 즐거움으로 알고 행한다.

한의사인 남편과 함께 세 아이를 데리고 주말이면 어르신들이 계신 시설로 가서 의료봉사와 함께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고 온다고 한다. 몇 년째 아무런 반응도 없던 어르신들이 어느날 “자기를 알아주더라”고 좋아하던 그이의 얼굴에서 난 행복을 보았다.

산만하고 말썽만 피우는 아들에게 일부러 어르신들이 계신 요양소에 봉사활동을 보냈더니 처음엔 깜짝 놀라더란다. 그런 아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발을 씻겨드리고 말벗이 되는 과정을 통해 평소의 습관이 많이 바꿔졌다고 자랑을 늘어놓는 한 엄마의 얼굴에서 행복을 보았다.

한쪽에선 어르신들께 정성껏 준비한 떡과 차를 대접하는 엄마들. 어제도 가게를 비우고 미용봉사 다녀왔다는 미용실 언니. 가게를 비운 만큼 금전적 손해도 있으련만. 싫은 기색은 전혀 없고 마치 콧바람이라도 쐬고 온 아줌마처럼 가위질하는 손길이 가볍다.

몇 년전 내가 가입한 한 모임에서 불우이웃돕기 찻집을 해서 모금된 성금을 어디에 누구에게 전달해야할 지를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적은 금액이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수십억을 기부하는 김밥집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적은 금액, 아이들의 작은 활동이라도 고맙게 받을 수 있는 그런 문화가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네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라 하고 세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세 잎 클로버를 밟는다.

돈이라는 행운을 잡기 위해 오늘 우리는 행복을 밟고 있지는 않는지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은 가을하늘이 참으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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