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가 길을 잃으면 잠시 멈춰 서서 자기가 걸어온 길을 돌아봐라.

“가다가 길을 잃으면 잠시 멈춰 서서 자기가 걸어온 길을 돌아봐라.”

이 말은 아프리카의 격언이다. 지금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 본다. 삶이라는 본질적 가치에 치열하게 고뇌하던 청년기 시절에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우리는 종종 현실의 벽에 가로 막힐 때 다른 세계로 도피하려는 경향이 있고, 여행도 그러한 도피의 일종일 것이다. 물론 문제의 해결을 찾으려는 환상을 지닌 채 말이다.

이문열의 소설 ‘젊은 날의 초상’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절박한 심정을 안고, 그 주인공의 결말을 기대하면서 떠난 여행이었다. 그러나 4월에 내리는 강릉의 눈꽃 속에서도, 천년 고도 경주의 찬란한 문화유적 속에서도, 삶의 생생한 활기로 넘치는 부산의 자갈치 시장 속에서도, 문명의 상징 서울의 그 번화함 속에서도 내가 찾는 그 무엇은 없었다. 적어도 나는 이문열의 소설 ‘젊은 날의 초상’ 속에 나오는 주인공은 될 수가 없는 게 분명했다.

절망적인 귀로에서 나의 여행이 위선이 아니라면 극단적인 그 무엇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 순간 등 뒤에 매고 있던 배낭의 무게가 느껴졌고 마음 속에 뭔가 맴돌기 시작했다. ‘우리의 삶에는 누구나 짊어져야 할 짐이 있고, 힘들다고 결코 짐을 내려 놓아서는 안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나는 무엇을 내려 놓으려 하는 것일까.’

그리고 내 시야에 고장난 버스가 보였다. 기사 아저씨가 차를 고치는 사이 승객들이 하나 둘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버스는 텅 비어 버렸다. 우리가 삶이라는 여정 중에 삶도 이처럼 고장난 버스처럼 멈춰 서서 신념, 인내, 용기, 정의, 절제, 겸양 등의 가치를 버리고, 탐욕, 불의, 무기력, 위선 등의 쓰레기만 남아 삶의 여정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모두 과거의 치열했던 의식의 파편들이 있다. 그 조각들이 다소 유치해 보일 수도 있고, 모순 투성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흔적 속에는 적어도 순수했던 모습들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지금의 내 삶이 힘들기 때문일 지도 모르지만 진심으로 그 때의 내 의식으로 돌아가고 싶다. 가다가 길을 잃으면 잠시 멈춰 서서 자기가 걸어온 길을 돌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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