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임마, 니 각시 뭐하려고 보험회사 보내?”

“야! 임마, 니 각시 뭐하려고 보험회사 보내?”
“몇 달 안에 바람난다. 보험회사 다니는 여자 몇 달 안에 쫑나더라!”
“아이고, 형님! 조카며느리 얼마나 번다고 보험 아줌마 시킨당가?”

내가 보험회사 다닌다고 차려입고 나온 다음에 모든 주위 분들이 염려 아닌 염려를 하는 바람에 내 신랑은 몸살을 앓았다. 집에서 얌전히 살림만 할 때에는 검은 안경에 민소매도 서슴치 않고 외출해도 흠이 되지 않았던 작은 행동들이, 보험회사 아줌마가 된 뒤론 큰 문제로 동네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산하엄마 검은 안경 턱~ 쓰고 큰 차 몰고 나가더라!”
“옷 사 입고, 화장하고 얼마나 남는다고… 그냥 집에 있지.”

난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옷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2년이 넘게 출·퇴근을 변함없이 하고 있다. 그것도 바람 한 번 쐬지 않고 말이다.

큰 딸 낳고 잠시 우울할 때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드라마가 있었다. 1996년도 ’애인‘이다. 황신혜와 유동근이 호흡을 맞추었던 바로 그 화제작-하얀 와이셔츠 밖에 몰랐던 그 시절에 푸른 와이셔츠로 뒤바꾸어 놓던 바로 그 드라마.

내 몸은 산욕기를 보내고 있는 산모지만 마음만은 남편 아닌 다른 남자, 비록 그가 유동근이 아니더라도 (꼭 그가 누구라고 정해진 사람도 없으면서도) 그 누군가가 무척이나 그리웠던 기억이 젖몸살로 고통스러웠던 그때의 나를 더 사색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지난 6월에 끝난 화제의 드라마 한 편이 온 동네 아줌마 입에서 화제가 되었다. 불륜코드의 식상한 소재지만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에 힘입어 시청률 상한가를 쳤다.

두 드라마 역시 공통되게 1년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무리를 한다. 하지만 결론은 다르다. 10년 전의 ‘애인’은 아이의 탄생으로, 아이를 매개체로 하여 각자의 가정을 지키게 했다. 순수한 아이의 탄생이 용서와 화합이라는 거대한 명제를 완성케 하였다.

이에 반해 10년이 지난 지금 ‘내 남자의 여자’에서는 죽음, 파산, 재혼 같은 파격은 없었다. 용서나 화합의 해피엔딩도 없었다. 단지 인간 내면의 바탕이 되는 외로움만 진하게 남겼다.

마치 그것은 곤충의 세계를 닮은 듯하다.
동물과 곤충의 세계는 암컷과 수컷이 만나면 단순한 행위의 ‘짝짓기’만 있다. 짝짓기가 끝나면 각자의 둥지로 돌아가고 홀로 남는 암컷도 잉태가 아닌 배출로 새끼를 자연의 손에 맡기고 홀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영장류의 우두머리인 우리는 남녀가 만나면 사랑을 한다. 사랑이 끝난 남녀에겐 책임과 의무 그리고 양육이란 거대한 과제가 남는다. 그 과제를 해결하는 곳이 바로 가정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가정이 요즈음 많이 깨지고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자기의 희생과 믿음, 배우자에 대한 존중이 밑거름이 되어야 꾸려갈 수 있는 가정.
너무나 쉽고도 어려운 가정이 사라질 때엔 우리도 아마 곤충으로 전락해 있겠지! 그리고 사랑보다는 짝짓기에 내 한 몸 불사르겠지! 마치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이런 단순한 ‘짝짓기’와 ‘사랑’의 모호한 관계는 바로 우리가 선택하기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내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좋아하는 일이 있고, 마음이 편하니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오늘 하루 땀나게 가족과 함께 진한 사랑놀음이나 한바탕 해 보는 게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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