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31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이병학 군수가 선거법에 발목을 잡혀 군수직을 잃을 처지에 몰렸다. 당선 뒤 13개월여 동안 5개월 밖에 직무를 수행하지 못했으니 ‘업무보고 받다가 시간 다 보냈다’는 힐난도 생뚱맞지는 않아 보인다.

민선4기 이병학 군정은 이른바 ‘반핵부안호’였다. 이 배는 민주당이 일으킨 지역주의 바람에 돛을 달았지만 폭넓은 ‘반핵’정서를 엔진으로 삼았기에 그같은 별칭에는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이군수는 2003년 발생한 부안사태의 진실규명, 군민화합, 경제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반핵 진영의 압도적인 지지와 기대를 한몸에 안았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탄생한 이군수의 반핵부안호는 예기치 못한 암초에 걸려 침몰의 위기에 놓여있다.

좌초와 침몰의 가장 큰 책임은 배의 선장격인 이군수에 있음은 물론이다. 민주당 후보공천을 앞둔 시점에 석연찮은 행동이 검찰에 포착돼 문제의 단초를 제공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깨에 실린 군민들의 기대와 염원의 무게를 몰라서였을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군수가 현 시점까지도 억울함만을 항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리를 떠나서 상식으로 접근해 보자. 현금 천만원을 신문지에 싸서 쇼핑백에 넣은 뒤 도당 간부의 승용차에 실어 전달하는 행위에 대해 그 누가 정상적인 당비납부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보수적이고 썩은 정당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관례로 삼는 정당 또한 없다.

이군수에 거는 기대와 염원의 밑바탕에는 정치인으로서 그에 대한 지역사회의 신뢰가 깔려있었다. 하지만 이군수는 두 차례에 걸쳐 신뢰를 저버린 셈이다. 그 한번이 중대한 선거를 앞두고 비상식적인 기부행위를 한 것이라면, 그 다음은 문제가 폭로된 뒤의 무책임한 처신이다. 이군수는 이번 환송심 판결 뒤 실익도 없어 보이는 대법원 재상고 대신 군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는 자세를 보여야 하지 않았겠는가.

한편 이군수의 고압적인 태도는 소위 ‘반핵’ 진영의 침묵과 두둔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아 보여 더욱 씁쓸하다. 지난해 5월 반핵대책위를 계승한 부안군민회의와 종교계, 의약계, 농민회 등 사회단체 대표자 21명이 발의한 후보단일화 범부안군민실천은 당시 여러 군수후보 가운데 민주개혁에 적합하다며 이군수를 각각 ‘범군민반핵민주후보’와 ‘단일후보’로 지정해 당선운동을 벌였다.

이들 반핵진영은 이군수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 그러나 재판을 통해 그 처신이 알려진 뒤에도 이군수의 책임을 묻지 않거나 그의 승소만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유권자들에게 찍어달라고 요청한 후보에게 ‘하자’가 발생했다면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하자 ‘보수’와 관련된 책임 있는 행동이 뒤따라야 옳다.

이들과 이군수와의 인간적인 유대와 동지적인 정서를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군수와 자신들에 대한 비판력마저 상실케 한다면 이제 부안에서 ‘반핵’ 정신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핵진영은 김종규 전 군수를 향하던 손가락질의 방향을 이군수와 자신에게도 돌려야 할 차례다. 그것이 없다면 ‘반핵부안’은 살아 있어도 죽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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