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하고 성의있는 고증을 통해 복원을 했으면...

홀수 주 토요일, 학교에 갑니다. 학교에서는 자치활동 및 계발활동이 이루어집니다. 학급회의가 끝나면 아이들은 각 부서를 찾아갑니다. 운동장 교실 특별실이 왁자지껄 합니다. 살아있는 학교의 모습입니다. 입시 압박에 시달리던 아이들에게는 모처럼 신나는 날입니다. 닭장 안에 갇혀 있다 나온 닭들 같습니다. 날고 뜁니다.

나는 문화답사반을 맡았습니다. 지원한 학생이 다섯 명으로 다른 부서에 비하면 적습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유연성이 있어 좋습니다. 가고 싶은 곳을 갑니다. 봄에는 봄바람을 쐬러 부안에서 보리가 제일 먼저 팬다는 까치댕이(작당)에 다녀왔지요. 가는 길 차창 밖으로 유천 도요지며 반계 선생이 살았던 우동마을이며 백포 운호 왕포마을을 지나며 펼쳐지는 바다와 들판에 아이들은 좋아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신석정 시인이 살았던 고택을 찾았습니다. 부안읍 선은리 식당 골목, 예전에 여러 번 갔었지요. 그때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어서 집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대부분을 울타리 밖에서 훔쳐보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나만의 안타까움이 아니었습니다. 해서 부안군에서 고택을 매입하여 옛 모습을 복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아이들과 함께 가려니 생각하다 찾았습니다. 들녘은 어린 모들이 들판을 푸르게 수놓고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한 이번 답사 ‘신석정 고택’은 실망이었습니다. 강진의 영랑 생가가 얼른 떠올랐습니다. 영랑 생가는 찾는 사람들로 북적대는데 석정 고택은 무심한 코스모스만 무성했습니다. 장사가 안 되어도 이렇게 안 될까 싶었습니다.

강진과 부안은 여러모로 비교가 됩니다. 강진 도요지와 유천 도요지, 동백나무 숲의 백련사와 전나무숲의 내소사,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과 실학의 창시자 반계 유형원,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김영랑 시인과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의 신석정 시인.

방문객들은 강진이 앞선 듯합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많은 영향을 미쳤겠지요. 하지만 신석정 고택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홍보 마케팅의 부족과 복원 작업의 허점은 초라한 방문객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영랑 생가의 모란 꽃밭과 영랑이 시를 쓰는 모습의 밀랍인형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옛 부엌, 장독대, 돌담, 우물터, 정원수가 옛 집과 멋진 조화를 이루어 사람을 끄는 힘이 있는 참 좋은 그림이었습니다.

반면 석정 고택은 텅빈 마당에 우물터 복원이 초가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닫혀있는 방문과 그 안의 시화 몇 점으론 영랑생가를 당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고증과 성의가 부족한 복원이었습니다. 아이들 역시 기대했다 아니다 싶었는지 그리 밝은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몇 송이 피어 반기는 코스모스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답사 길은 좀 허전했습니다.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시인의 시는 여전히 내 가슴에 오롯이 새겨져 있는데 말입니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 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똑 따지 않으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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