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에 아이들 웃음 같은 함박꽃이 활짝 필 때 아이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교정에 아이들 웃음 같은 함박꽃이 활짝 필 때 아이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지금은 테마식현장체험학습이란 이름으로 정착되어 가지만 나는 아직도 동의하지 않는다. 수학여행이 더 좋다. 왜냐하면 말에는 말 자체에서 풍기는 어감, 철학, 정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테마식현장체험학습이란 말은 단어 합성구조의 어법도 그렇거니와 이전 세대들이 다녀왔을 수학여행의 정서적 동질감을 깨뜨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이 나온 김에 말 하나 더 하고 싶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말도 시대에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교류에 의해서 말도 들어올 말은 들어올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마구잡이는 안 된다.

이남에서 흔히 쓰는 ‘노크’라는 외래어를 북녘에서는 ‘손기척’이라 한다. 요즘은 방음이 잘 되는 문이기에 예전의 창살문 시대의 ‘으흠’이라는 기척으로는 안에까지 들리지도 않는다. 손으로 두드려서 기척을 해야 한다. ‘노크’라는 외래어보다 ‘손기척’은 우리 풍습과 생활철학을 잘 담고 있다.

제주도의 그 숱한 식물들, 새파란 바다, 화산폭발로 인해 생긴 주상절리, 천연동굴, 산굼부리, 폭포, 잘 가꾸어 놓은 각종 정원, 아이들이 좋아한 소인국, 드라마 올인 촬영지 섭치코지, 신의 예술품 한라산 등 자연학습장으로 손색이 없었다. 똥돼지 삶은 요리 돔베고기 맛까지도.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덩달아 즐거웠다.
부러운 것이 있었다. 박물관이었다.

“? 나믄 도새기 잡앙 잔치?곡, 아덜 나믄 발질로 조롬탁 찬다.”(딸 나면 돼지 잡아 잔치하고 아들 나면 발길로 엉덩이 찬다)는 제주도 해녀박물관 지하전시실 내려가는 길 벽에 씌어 있는 글귀다. 제주도에서 여자의 위상과 역할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또한 그곳에서 어촌계 이사회규약(1977), 잠수시범대회개최 계획(1966), 수산일보(1948), 1932년 제주도 해녀 투쟁사실 등도 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제주도에는 ‘국립제주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이 더 있었다.

우리 부안에도 이런 박물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산 들 바다가 아름다워 예술인 부안에 박물관 하나 있어 그곳에서 부안의 역사, 삶과 문화를 죄다 보여 줄 수 있다면….

산 들 바다 살림살이 도구들, 산 들 바다의 특산물, 희귀 식물, 새와 동물, 갯벌에서 사는 바닷고기들, 유천 도요지에서 만든 자기, 죽막동 제사 유물들, 축소 제작된 각종 어선, 당산, 여러 놀이 문화, 실학 창시자 유형원 선생의 저작물, 매창, 신석정 시인의 시집, 부안을 소재로 쓴 여러 문집, 고문서, 한국전쟁의 상흔, 구석기 시대부터 출토된 문화재, 박물관이 건립되면 기증하고 싶은 소장자들의 소박한 소장품 등...

물론 재원의 뒷받침을 탓하겠지요.
부안 거리를 걷다보면 재원이 널려 있다는 생각이 미친다. 현란한 가로등, 너무 고급스러워 발 딛기 불편한 인도, 안 어울리는 물의 거리, 남북으로 심어진 부안정서와 거리가 먼 마로니에 가로수, 각종 시범 마을.

부안은 부안다울 때 멋지다. 부안은 서울 부산 인천 대구 광주는 아니지 않은가. 부안 사람이나 관광객이 부안에서 서울의 명동이나 종로를 걷는 기분을 느낀다면 멋쩍을 것 같다. 이미 쏟아진 물 돌이킬 수 없고, 다시 쏟을 물이 있다면 박물관 건립에 쏟았으면 좋겠다. 박물관은 그리 크지 않아도 된다.

멀지 않은 날, 다른 지역 학생들이 부안에 수학여행을 와 새로 건립된 부안박물관에 들러 온갖 부안의 문물 전시에 눈이 휘둥글 해져서 박물관 매점에서 부안당산이나 변산반도 문양이 새겨진 열쇠걸이 하나씩 사들고 즐거운 모습으로 돌아가고, 인솔 왔던 선생님들이 손에 손에 부안뽕술을 들고 부러운 눈으로 부안을 가슴에 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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