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들>
뒹굴고 싶다
이렇게 날 좋은 날엔
뉘랴 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콩을 꺾으며 하루종일
뒹굴고 싶지 않으랴
내 누이의 이빨이 부러지지만 않았다면
우리의 엄마들이
울면서 머리만 깎지 않았다면
누군들 애들 손을 잡고 한나절
금빛 들판을 걸어 나무 그늘 밑
도시락을 풀어놓고 싶지 않으랴
친구들이 쫓기지만 않는다면
쫓기다 철창에 갇히지만 않았다면
뉘랴 아스팔트 흙먼지 속을
눈물보다도 더 진한 땀방울로
절하며 절하며 가고 있었으랴
다가올 죽음의 고통처럼
점점 살갗을 파고드는 이 한기 속
누군들 밤마다 촛불시위를 하고 있으랴
백 날을 넘어 또 백 날을 향해
이리하여 핵폐기장이 폐기되는 날
천지에 울려 퍼질 그 함성의 이명,
그날이 오면
누군들 손에 손잡고 노래부르지 않으랴
지나치는 사람마다 눈인사를 건네고
서로 어깨를 두드리지 않으랴, 미움과
미움이 서로 용서를 하고 이 산하를 더욱 사랑하지 않으랴
누군들.
박형진
1958년 전북 부안 출생. 1992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바구니속 감자싹은 시들어 가고』와『다시 들판에 서서』, 산문집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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