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기 위해 백내장 수술까지76세의 언포마을 운전기사

언포마을에 들어서니 바다가 멀리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동네 뒤편으로 울긋불긋한 나무들이 산을 채우고 있다. 산 아래로 40호가 모여 있는 모습이 평화롭기까지 하다.
전화를 통해 안내 받은 집에 도착하니 연세 지긋한 분이 마당 앞에 서있다. 설마 이분이 내가 만날 김세현씨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변산농협 소식지에 조그맣게 실린 김세현씨 미담을 보고 젊은 분이 참 멋지다 하고 생각하던 차였다. “어서오십시오”하며 어르신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김세현 선생이세요?”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자리에 앉으며 연세를 묻자 76세라 말한다. 마당앞에 세워진 낡은 봉고가 보건소에, 목욕탕에, 갯벌에 나갈 사람들을 태워다 주는 차였다. “봉고차를 마련하고 난 후부터 동네 사람들을 태우고 다녔다“고 한다. 10여년전의 일이다.
원래는 언포 마을에서 최고로 많은 농사를 지었지만 지금도 밭 한 평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곰소에 갔는데 배가 각시처럼 맘에 드는 것이여. 사고 싶어서 당장 아버님께 말씀드렸더니 하늘이 낮을 정도로 펄쩍펄쩍 뛰고 난리였제”
이후 그는 결국 각시처럼 예쁜 배를 샀고 선주가 돼서 어장에 나갔다. 어장을 나갈 때마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4-5년 지나니 빚쟁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빚을 정리하기 위해 논과 밭을 하나, 둘 정리 한 것이 땅 한 뼘도 없게 됐다. 김세현 어르신은 마당 바로 앞의 밭을 가리키며 “마지막 남은 땅이었는데 올봄에 팔았다”고 말하며 여운을 남기는 미소를 짓는다.
작년 3월에 차 기름 값 하려고 50만원 대출했는데 내년 3월이 상환일이다고 말한다. 500만원도 아니고 50만원이라니. 참 소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참 여유롭고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꽃 피는 춘삼월에 이곳저곳으로 동네 사람들 태우고 구경 다니다 보니 기름 값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김세현 어르신은 최근에 담배에 손을 댔다. 살을 빼기위해서다. 얼마 전 생일날 아들이 사준 담배가 4보루가 남아서 그것만 피우고 끊겠다고 한다. 연세도 많으신데 운전하기 괜찮은지 물었다. “차가 파워가 아니라서 힘들다”며 “소원이 있다면 중고라도 파워핸들 있는 차 몰고 싶다”고 말하며 껄껄 웃는다. 두어달 전에는 운전적성검사를 했는데 시력이 안 좋아서 더 이상 운전할 수 없게 되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백내장 수술을 받으면 시력이 좋아지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낮에는 암시랑 안하는데 야간에는 거시기 하당께”라고 말하며 백내장 수술 이유를 설명했다. 젊었을 때도 버스를 타면 꼭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차가 좋은 것이다. 자식들이 운전을 말려도 계속 잡고 싶다고 한다. “자식들은 막 못하게 혀. 사고라도 날까봐 걱정스런 가벼”
언제까지 운전대를 잡을 거냐고 물었다. “힘이 부쳐 운전 못 할 때까지 태우고 댕겨야제 “다 돈 없고 가난한 사람들인데....”
김세현 어르신의 낡은 봉고가 격포를 오가는 언덕길을 더 이상 부르렁 거리며 다니지 않을때 더 좋은 차를 가진 따뜻한 사람이 김세현 어르신을 모시고 보건소로, 갯가로, 목욕탕으로 다니는 모습을 그려본다.
언포 마을 길목에 있는 상록슈퍼 아주머니가 김세현 어른신에 대해 말을 늘어놓는다. “목욕탕이나 갯가 나갈 때 집집마다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곤 하지라. 다 전화해서 몇 시에 출발한께 준비하라고 말하고 바로 데리러 와요. 새만금도 구경시켜주고 고마워서 담배 한 갑이라도 주믄 손사래를 치며 절대 받는 일이 없어요. 정말 고마운 분이요.”
/이영주 기자 leekey@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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