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선 직접 만들어..."사는게 다 불법이지"...이젠 망둥어도 효자

ⓒ 염기동 기자
새벽 5시께 문포쪽 방조제에 도착했다. 여기서 박창수 씨를 만나 풍천장어와 흰새우를 잡는 배를 타기로 했다. 어두컴컴한 기운이 하늘과 바다를 나누지 않았고 쌀쌀한 바람은 옷을 헤집고 들어 왔다. 먼발치에 등이 환하게 켜진 배가 한 척 보일 뿐이다.

일행을 뒤따라 온 망둥어 낚시꾼들도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총총걸음으로 끌고 온 자동차 안으로 들어간다. 10여분을 기다렸을까, 선외기(쏘내기라고 불림)가 일행 곁으로 오면서 소리를 친다. “어이, 저 밑으로 와야제.” 박창수 씨다. 선외기로 2분가량을 달리니 등을 켠 배가 눈앞에 나타났다. 바지선이라고 했다. 4년 전에 1천만원을 들여 박씨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불법이다. 합법이 되려면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하고, 허가를 받으려면 공인된 공장에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박씨는 웬만큼 큰 어선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했다.
“오리다리가 부러진다는 얘기가 나온 곳이 여그여. 그만큼 물살이 싸다(빠르다)는 것이여. 조수가 싸고 수심이 얕아서 밑이 뾰족한 배는 작업을 못해요. 하고 보니까 바지선이 굉장히 편하더라고. 단 무허가니까. 정부에서 허가를 맡아서 하는 것만 정상이고 개인이 하는 것은 전부 불법 아니요. 사는 게 다 불법이지.”

바지선은 생각보다 아늑했다. 흔들림이 거의 없고 보일러 시설이 돼 있는 방도 딸려 있다. 배를 타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 정도는 호텔 수준이다. 안주인이 타준 커피를 얻어먹는 사이 그물을 내렸다. 그물 길이는 50여m라고 했다. 길채(가로대)가 벌어지면서 한쪽이 물에 쑥 들어갔다. 그물이 썰물 방향으로 길게 늘어진다. 그물코는 앞이 드문드문하고 뒤가 촘촘하다. 뱀장어와 새우가 쉽게 들어와서 꼭지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잡아 묶었다.

일은 바지선과 늘어진 그물의 꼭지를 선외기로 왔다갔다 하면서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썰물 때에만 작업을 하는데 잘 잡히는 날은 왕복횟수가 늘고 시원찮은 날은 바지선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해가 뜰 즈음에 첫 작업을 나갔다. 그물을 드는데 묵직하다. 꼭지에 묶인 끈을 풀자 흰새우가 배 안에 쏟아진다. 두 달만에 500만원을 벌어준 녀석들이다.

망둥어, 갯가재, 꼴뚜기도 같이 올라왔다. 때미(전어의 일종)도 들썩거린다. 풍천장어는 잡히지 않았다. 요새는 가끔 한두 마리씩 잡는데 주인이 잡는 족족 그냥 끓여 먹는다고 했다.
“장어는 바람불고 천둥칠 때 위에서 내려오거든. 날씨가 안 좋을 때를 아는 모양이더라구. 오늘 같이 날씨가 좋은 날은 안잡혀.”

배 위에서 잡은 것들을 종류별로 나누는 작업을 했다. 꼴뚜기나 갯가재는 따로 넣고 새우는 골라서 얼음을 채운 박스에 넣었다. 망둥어는 바로 배를 갈라 널었다. 요새는 망둥어도 잘 안 나와서 한 가구에 5만원씩 받고 판다. 말리면 7만원까지 받는다.

새만금 방조제 때문이라고 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막아야 한다고 하니까 빨리 막아야 전라북도에 큰 이익이 되는 갑다 했는디, 실상 (이익이) 오도 안 헌다 이말이여. 우리 같은 사람한테는 마이너스가 되는 겨. 방조제를 터야 허는디. 태풍 와서 쓸어가버리면 쓰겄어.”

문포에 사는 박창수씨와 본지 한계희 기자가 해파리가 가득한 그물을 걷어올리고 있다. ⓒ 염기동 기자
갓 잡아올린 싱싱한 새우. ⓒ 염기동 기자

두 번째부터는 정말로 잡힌 새우가 처음처럼 많지 않다. “꽁지(꼭지) 따러 가면 올라올 시간이 없다”던 안주인의 말은 어긋났다. 다만 간간히 풀치나 웅어가 올라왔고 전어가 한 마리 잡혔을 뿐이다. 한 마리면 밥 한 공기를 먹는다는 범게(돌게)도 한 마리 잡았다.

너댓번을 왕복하고 나니 벌써 갯벌이 넓어졌다. 박씨는 평소보다 적지만 그래도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쓸려 나가는 물이 짙은 황토색으로 바뀌면서 그물을 걷을 준비를 했다. 그물을 걷지 않으면 뻘 속에 묻혀버려서 못 쓰게 된다고 했다.

1시가 다 돼 새우가 듬뿍 들어간 국에 점심을 먹고 나서 박씨는 선외기로 일행을 다시 뭍에 내려다 줬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망둥어를 낚는 낚시꾼들이 유난히 많다. 떠나는 박씨의 선외기 한쪽에도 아침 햇볕을 받아 바짝 마른 망둥어가 줄지어 누워 있다. 문포 앞 제방에 취미와 생존이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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