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독립신문 창간 두돌에 즈음하여…


오늘은 목요일, 혼곤히 아침 잠에 빠져있는 아이를 닦달하듯 흔들어 깨운다. 서둘러야 한다. 너무 늦지나 않았을까? 동동걸음을 더욱 재촉하여 신문사 계단을 바삐 오른다. 그새 아주머니 몇 분이 신문 뭉치를 이 만큼 쌓아 두고는 발송일을 하시느라 손이 바쁘다. 창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신문 보내는 일을 도왔다고 하신다. 그래서인지 신문을 두 번 세로로 접어 띠 종이 봉투 속에 집어 넣는 손놀림이 숙련공의 솜씨처럼 여유로우면서도 빠르다.
“언제까지고 신문접기 하실게지요?”

“그럼, 대를 이어서라도 계속 해야지.”

농담같은 내 물음에 한 술 더하여 다짐하신다. 촛불집회 때 도막초 하나로 눈보라 모진 풍상을 이겨내시던 꼭 그 모습이다. 이렇다하게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저 분들의 조용한 도움이야말로 부안독립신문이 이제껏 버티어 온 힘이 아니었을까하고 새삼 생각해본다.

바람 잘 날 없는 나무처럼 가지 무성하게 자라서일까? 요즘들어 신문사 안팎이 조용할 날이 없다. 아니다, 드 동안 독립신문에 대해 항시 독사같은 눈을 뜨고 해코지하려 덤비는 ‘독선군수’와, 그 서슬에 눌려 광고 하나 마음 놓고 줄 수 없었던 사정이었음을 두고보면, 밖의 형편은 한결 나아보이지 않은가? 바깥 사정이 이렇게 좋아졌는데도 나뭇가지가 저 혼자 흔들리며 소란스러운 것은 무슨 까닭인가? 잘잘못과 진실이야 언제건 드러나게 마련인 법.

다만, 겨울나무가 필요없는 잎을 스스로 떨구며 새로운 봄을 준비하듯, 지금의 소란스러움은 독립신문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하여 거듭나기 위한 제 안의 몸부림이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언론학을 공부한 적도 없고, 신문이라는 것에 대해 그만큼 문외한일 수 밖에 없는 내가 신문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훈수하려 드는게 분명 주게 넘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도움이 될지 안될지조차 모를 훈수 하나 해야겠다. 그것은 부안독립신문이 ‘내’가 만드는 ‘나’의 신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며, 지금만큼 위태로운 때가 없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편집권독립’이니 ‘언론자유’니 하는, 내가 소화하지 못할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나는 다만 늘상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보고 듣고 배우게 된 ‘민초들의 언론학’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표정과 느낌으로, 때로는 육담의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 ‘언론학’은 다음의 두 동화 이야기로 정리된다.

그 하나, ‘별거숭이 임금님’이라는 동화이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옷을 갖고 싶어하는 임금에게 어느 날 두 재단사가 찾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옷은 지혜로운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신비한 것이라 속이고는, 있지도 않은 천으로 옷을 지어 바친다. 결국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거리로 나선 임금님. 그러나, 누구도 임금이 벌거벗었다고 말하지 못한다.

행여 멍청한 사람으로 내몰려 벌을 받게될까 두려워한 까닭이다. 그 때, 정말 지혜로운자, 맑은 영혼을 가진 어린아이만이 그 우스꽝스러운 꼴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여 사실을 폭로(?)하고야 마는 것이다.

다음은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왕에 대한 이야기다. ‘아폴론’의 미움을 사 당나귀처럼 귀가 변해버린 왕은 자신의 흉칙한 모습이 백성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머리를 깎으러 온 이발사들을 모두 없애버린다. 한 이발사만이 살아남게 되었는데, 이발사는 그 놀라운 비밀을 가슴에 묻어둔 채 살아야 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래 하루는 참지 못하고 강가 갈대숲에 굴을 파고는 비밀을 털어놓았는데, 갈대들이 그의 말을 바람에 실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고 세상에 알렸다는 이야기다.

부안의 민초들이 말하는 ‘언론’은 이런 것이다. 신문은 아무런 계산을 하지 않는(특히 정치나 관계 등에 대해) 어린아이 같은 눈과 입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떤 형태의 힘에 의해서건 언론이 통제되어 막힐 때, 갈대숲에 이는 바람처럼 비밀은 소문으로 떠돌게 된다는 것.

지금 이사회에서는 제 2창간이다, 비상대책위다 하여 바쁘게 움직이는 듯 하다. 그러나 급할 때일수록 한 발짝 물러서서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혹여라도 정보독점의 수단으로 신문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민중은 우매하여 잡아 끄는대로 끌려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정보의 독점은 은밀한 독재의 또다른 형태이다. 적어도 부안독립신문사에서만큼은 그런 일을 상상조차 하지말아야 한다. 그들은 임금이 벌거벗었음을 알아보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맑고 현명하다. 창간정신을 되짚어보고 뒤엉킨 실타래를 진심으로 풀어내려 마음먹는다면 더 이상 빗장을 걸어두어야 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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