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말’의 2004년 11월호에 실린 ‘방폐장 지상논쟁’이 반핵운동 진영의 도마에 올랐다. 과연 우리나라 대표적인 진보매체로 알려진 말이 11월호에 기획한 ‘방폐장 지상논쟁’은 생산성이 있는 논쟁인가. 적어도 핵폐기장 지상논쟁을 하기위해서는 뚜렷한 배경과 이유가 제시되는 동시에 논쟁의 잣대가 주어져야 함에도 말의 ‘방폐장 지상논쟁’에는 왜 논쟁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역사’가 빠져있다. 또한 최근 부안 핵폐기장 싸움을 통해 시민사회진영이 얻어낸 성과는 뒤로 하고, 마치 핵폐기장 논란이 처음 빚어지는 것인 양 기획되었다는 점에서 기획방향의 잘못이 지적되고 있다.
‘말’이 기획한 ‘방폐장 지상논쟁’에는 한국수력원자력(주) 원자력환경기술원 김재혁 연구개발원팀장의 ‘“환경단체들의 사실왜곡과 무대책을 질타한다”’는 글과 환경운동연합 녹색대안국 양이원영 반핵 담당부장의 ‘“졸속적 후보지 선정, 돈과 폭력, 사찰로 강행하는 국책사업”’이라는 핵찬성자와 핵반대자 양측의 의견이 동시에 실렸다. 그러나 ‘말’의 이번 기획에는 ‘방폐장 지상 논쟁’에 대한 아무런 배경 설명이 없기 때문에 독자들이 왜 뜬금없이 이런 기획이 제기되었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상논쟁 첫 번째로 소개된 한수원의 김재혁 팀장의 글은 본문에 소개된 것처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한국정책지식센터는 ‘방사성폐기물 관리 정책의 문제와 개선 방안’이라는 주제로 열린 환경정책포럼에서 환경단체를 대표한 방송통신대 이필렬 교수와 이승화 반핵국민행동 간사가 제시한 해결 방안을 반박하는’ 글을 싣고 있다.
지상논쟁의 내용은 94년 이래 계속되어온 ‘핵폐기장 부지선정 및 건설을 둘러싼 절차상의 문제’를 서로 공박하는 글이다. 한쪽은 환경단체와 주민을 질타하고 있고 또 한쪽은 국책사업이 국가적 폭력과 강압으로 일방적으로 추진돼온 것을 비판하는 글이다. 그러나 양측의 글이 비슷한 무게로 실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부안 핵폐기장 반대투쟁이 있은 후 최근 1년 사이 우리나라 핵에너지 정책에 있어서 새로운 기류가 흐르고 있다. 지난해 부안사태와 관련해 해당 장관이 일방적인 국책사업 추진으로 사퇴를 하는가 하면, 올 9월에는 산업자원부 장관이 “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공론화기구를 통해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특히 핵폐기장 부지선정과정에서 한수원이 부안에서 벌인 ‘V2 프로젝트’와 같은 공작 사실이 드러나 절차상의 잘못이 지적됐다. 최근에는 감사원이 산자부와 부안군에 감사 계획을 밝혔고, 국가인권위가 정부와 부안군에 핵폐기장 건설 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우리나라에서 핵폐기장 부지 선정과 같은 국책사업은 더이상 과거처럼 일방적인 힘의 논리가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동안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통해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이뤄낸 국가의 에너지정책을 전환시켜낸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러한 흐름이 녹아난 지상논쟁을 실었더러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향미 기자 isonghm@ibuan.com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