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서면의 한 고추밭  기나긴 장마와 태풍, 역병과 탄저병에 시들시들 말라있다.                                                                                                                 사진 / 김정민 기자
하서면의 한 고추밭 기나긴 장마와 태풍, 역병과 탄저병에 시들시들 말라있다. 사진 / 김정민 기자

벼, “올해도 적자” 쓰러지고 병 나고

고추, 잦은 비에 역병, 탄저병 심해
작년보다 3배 가까이 강수량 많아
이상 기후 길어진다, 대비 요구도

내년엔 괜찮겠지라며 논바닥에 누워버린 벼를 바라보는 동진면 농부 김성조(38) 씨의 통장은 올해도 마이너스다. 장마가 길어 이삭거름도 안 줬는데 연이은 태풍에 한두 개 논만 남겨두고 모두 쓰러졌다. 농사를 잘 못 지어서 그런 것이겠지 자책하지만 논이 마를 새 없이 길어진 장마가 문제였다. 돌이켜 보면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내년엔 괜찮겠지’ 했던 것 같다. 내년도 내후년에도 안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려움은 모두 날씨 탓이다. ‘지구가 아프다’라는 텔레비전 속 어느 학자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부안읍 주공아파트에 사는 김 아무개(48) 씨 논은 폭탄 맞은 것처럼 쓰러졌다. 올해는 적자를 면할 수 있을까 영농 장부를 열어보지만 한숨뿐이다. 로터리 트랙터값 25만 원, 모판 값 35만 원, 이앙기 기사 15만 원, 비료 15만 원, 제초제와 새참까지 더해보니 1필지 벼를 심는 데만 꼬박 110만 원이 넘게 들었다. 자신의 인건비는 한 푼도 계산에 넣지 않았다. 2번의 드론 방제 값은 외상으로 남아있다. 80kg짜리 12가마로 계약한 할이 논값 200여만 원과 콤바인값 25만 원, 건조비 15만 원을 빼고도 남는 게 있으려면 3톤은 수확해야 하는 데 잘해야 2톤을 넘길 것 같다. 쓰러진 데다가 벼멸구에 알마름 병까지 걸렸고 알곡에서 싹마저 트고 있으니 등급도 좋을 리 없다. 아무리 주판을 튕겨봐도 손해다. 손실은 직불금으로 고스란히 털어 막고 겨울엔 인력시장에 나갈 계획이다.
하서 불등 마을 이상훈(49) 씨의 고추밭은 군데군데 이가 빠졌다. 역병에, 탄저병에 심었다가 뽑아낸 고추만 해도 400주가 넘는다. 수확한 것도 품질이 나쁘다. 비가 와도 너무 많이, 그것도 자주 왔기 때문이다. 해마다 500근의 고추를 땄다는 이 씨는 가을 끝물 고추에 기대를 걸고 있다. 퇴비 값에 비닐값, 모종값, 농약값을 충당하기 위해서라지만 “잘해야 본전”이라고 한다. 새벽에 일어나 로터리치고, 두렁 만들고, 비닐 씌우고, 고추 심고, 물주고, 약준 자신의 품 삵은 잊은 지 오래다. 그 또한 내년을 걱정한다. “날씨가 이상 혀”라면서……
농민들의 시름은 가정의 식탁으로 이어진다. 지난 2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 동향자료’에 따르면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8월 대비 0.7% 상승했다. 휘발유나 도시가스 가격이 낮아져 평균 상승 폭이 크지 않을 뿐 밥상에 오르는 농·축·수산물 가격은 10.6%나 상승했다. 더 가파르게 치솟은 것은 신선식품 지수다. 무려 15.8%가 올랐다. 이 중에서도 채소의 경우 28.6%라는 기록적인 상승 폭을 보였다. 주부들이 살까 말까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는 이유다. 마지 못해 샀지만 날씨가 이러니 불안하기만 하다.
고기를 파는 식당 사정도 딱하다. 코로나로 손님이 줄어든 데다 채솟값이 올라 ‘상추 좀 더 주세요’라는 요구에 따라 그날의 영업 손익이 좌지우지된다. ‘고기로 상추를 싸 먹는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가격을 올리는 대신 푸짐하게 내놓던 밑반찬을 줄였다.

이같이 전례가 드문 작황 부진은 비밖에 생각나지 않던 여름 날씨 때문이다. 기상청이 제공하는 기상자료개방포털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까지의 부안지역 누적 강수량은 1383.3㎜로, 작년 671.4㎜에 비해 두 배를 넘어선다. 특히 여름인 6~8월의 경우 3배 가깝게 비가 많이 왔다. 전주기상지청도 1973년 이후 가장 많은 비가 온 장마철이었고 6월보다 7월의 최고기온이 오리려 낮은 예전과 다른 여름이라는 통계를 내놓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알던 뜨거운 여름이 아니라 습기 많고 축축한 여름이었던 셈이다.
연이은 태풍도 작물 생장에 피해를 줬다. 올해 총 8개의 태풍이 발생했고 이중 3개(5호 장미, 8호 바비, 9호 마이삭)가 우리나라를 지나갔다. 기상청은 태풍 강도가 커진 이유가 바다의 평균온도가 1℃ 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린란드 빙하는 서울시 면적의 5분의 1이 사라지고 미국 캘리포니아는 서울의 6배가 불에 탔다. 부안군도 예외일 수 없다. 부안군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총 2498ha의 농경지가 도복이나 침수 피해를 입었다. 집계되지 않은 밭작물의 생육 부진을 더하면 피해는 더욱 커진다. 고추 농사에 작은 관심만 있어도 비가 오면 병이 생긴다는 것을 안다. 특히 탄저병이 돌기 시작하면 그해 고추 농사에 기대를 걸어선 안 된다.
농촌진흥청, 농촌경제연구원 등 농업 관련 기관들이 내놓은 각종 보고서도 작황 부진의 원인으로 이상 기후를 꼽는다. 어떤 농약을 하거나 비료를 더 주거나 하는 식의 단순한 농사법 변화로는 대비될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변화를 볼 때 이상 기후는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부안지역에 어떤 작물을 심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하거나, 키가 커 도복이 심한 신동진을 대처할 품종을 개발해야 한다는 식의 예방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안군농업기술센터 식량 작물 담당자는 “중생종은 9월 말, 중만생종은 10월 초 이후에 정확한 집계가 나올 것”이라며 “도복 피해가 전체 논의 23% 정도에 달하기 때문에 수확량 감소에 따른 최소 10% 이상의 농가 소득 하락이 따를 것”으로 내다봤다.
한 농부는 “우리가 너무 흥청망청 자원을 낭비한 것 같다”며 “뿌린 만큼 거두는 게 농사인데 이젠 자연이 인간에게 준 만큼 다시 거둬 가려나 보다”고 한숨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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